등록 : 2019.07.26 06:01
수정 : 2019.07.26 20:12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1909년 12월4일 이용구(李容九)는 ‘우리 단군으로부터 4천년의 신성한 역사를 지니고 우리 태조(太祖)가 500년 왕업을 창시한 땅에서 살고 있는 2천만 국민 동포’에게 한 장의 성명서를 발표한다. 요지는 ‘노예의 멸시에서 벗어나고 희생의 고통을 면하여 동등한 대열에 서서 완전히 새롭게 소생하여 앞을 향하여 전진해보고 실력을 양성한다면 앞날의 쾌락을 누리고 뒷날의 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족의 독립을 바라는 열혈 민족주의자의 울분에 찬 말씀으로 들린다.
알다시피 이용구는 일진회장(一進會長)이고, 그가 발표한 성명서는 대한제국과 일본의 합방을 바라는 이른바 ‘일한합방성명서’이다. 노예의 멸시를 벗어나고 희생의 고통을 면하려는 유일한 방법이 일본에 나라를 송두리째 가져다 바치는 것이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도대체 독립을 위해 매국해야 한다는 이용구의 논리는 어떤 것이었던가?
성명서는 자책(自責)으로 가득 차 있는데,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모든 오류는 조선이 저질렀다는 것이다. 예컨대 1894년 일본은 막대한 전비(戰費)를 소모하고 수만명의 군사를 희생하여 조선을 청(淸)나라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한국의 독립을 확고하게 만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어지러운 정치로 일본의 호의를 배격해 독립의 기초를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청일전쟁). 일본은 또 청일전쟁의 10배나 되는 전비를 사용하여 한국이 러시아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주었지만(러일전쟁), 한국은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면서 결국은 외교권을 잃고 보호조약을 체결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을사늑약 이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밀접해진 것이 사실이므로 한국은 감정을 풀고 기술을 배우고 문명의 모범을 조금씩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헤이그 밀사사건을 일으켜 결국에는 정미칠조약을 체결하게 만들었다. 정미칠조약 이후 3년 동안 한국은 식산(殖産)에 힘쓰고, 생활을 향상시키고, 교육을 발전시키고, 지식을 넓혀야 했건만, 그 중 한 가지도 이루지 못했다. 도리어 안으로는 권세와 이익을 다투고 밖으로는 폭도와 비적(匪賊)이 창궐하여(의병 항쟁) 인민의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 백성을 보살피며 한국을 위해 수고를 다했건만,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여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이용구는 청일전쟁 이래 일제의 모든 침략 행위는 오직 한국을 위해 베푼 은혜로, 한국인의 독립을 위한 노력과 저항은 모두 배은망덕의 어리석은 짓으로 생각했다. 민족주의의 언사로 서두를 포장한 그의 성명서의 최종적 선택은 단 하나, 일본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 곧 나라를 일본에 넘기는 매국이었다. 이용구의 ‘일한합방성명서’는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이 매국의 문서를 읽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참고 읽어보면 오늘날도 이용구의 논리를 반복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