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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6 10:41 수정 : 2017.02.16 11:28

[김양중 종합병원] 고혈압


“한번 먹으면 치료가 되는 약을 왜 아직도 개발 못하고 있나요? 먹지 않으면 뇌졸중에 걸린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약을 먹고는 있는데, 잊어버리고 못 먹을 때도 많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에요.”

고혈압으로 진단된 뒤 약을 먹기 시작한 지가 벌써 15년 가까이 됐다는 김아무개(64)씨는 혈압을 낮추는 약, 이른바 ‘고혈압약’을 끊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 전이나 뒤에 혈압을 낮추는 약과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것이 그의 일과입니다. 혈전은 혈관 안에서 피가 굳는 것으로, 혈관 안을 돌아다니다가 뇌나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막으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고혈압이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높기 때문에 혈전을 방지하는 약을 먹기도 합니다. 김씨는 여행을 가는 등 어디를 다녀오려고 해도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고혈압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챙겨 먹는다고 해도 약을 타러 병원에 갈 때쯤 되면 약이 많이 남아 있다”며 “꾸준히 약 챙겨 먹기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0대엔 낮은 범위 정상이었던 여성
50대 들어서며 고혈압 진단받아
15년간 매일 아침 약 먹으며 관리
중간에 약 바꿨다 ‘기침’ 부작용도

“퇴직 뒤 운동하고 채소류 섭취
약 대신 습관 바꿔 관리하고 싶지만
뇌졸중·심근경색 합병증 걱정에…
한번에 치료하는 약 개발 못하나요?”

김씨는 약 15년 전에 건강검진에서 고혈압이 의심됐고, 병원을 찾아 혈압을 여러 차례 잰 결과 고혈압이라고 진단됐습니다. 그 뒤부터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습니다. 김씨는 무척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물론이고 30대까지도 혈압을 재면 저혈압이라고 나왔다”며 “고혈압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혈압의 정상 범위는 낮은 쪽(이완기)이 보통 60~90㎜Hg이고, 높은 쪽은 90~120㎜Hg 정도인데 김씨는 혈압이 낮은 정상 범위에 속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로 유추해 보면 낮은 정상 범위에 있던 혈압이 나이가 들면서 점차 높아져, 50대가 됐을 때부터는 고혈압에 해당될 정도로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혈압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 자료를 봐도 고혈압 환자 수는 50대에서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나이대별 고혈압 환자 점유율이 40대의 경우 2015년 기준 11%에 불과하다면, 50대는 26.5%가 될 정도로 크게 늘어납니다. 하지만 40대에도 고혈압 환자가 꽤 많은데 스스로 고혈압에 해당되는지 알지 못해 치료를 덜 받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종신 경희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50살 이전 즉 상대적으로 젊은 고혈압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환에 대한 인지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음이 중요하다”며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큰 문제인데, 이처럼 고혈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다가 50살 이후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의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씨의 경우 2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받다가 고혈압이 50대에 들어서면서 진단됐기 때문에 진단된 뒤 곧바로 치료에 들어간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고혈압에 대한 해외 연구 결과를 보면 고혈압 환자에서 높은 쪽 혈압을 2㎜Hg 정도만 낮춰도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발생 위험은 각각 7%, 10%씩 낮춘 것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높은 쪽 혈압이 20㎜Hg, 낮은 쪽 혈압이 10㎜Hg 높아질 때마다 심장 및 혈관질환 사망 위험은 2배씩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김씨는 “약을 먹은 뒤로는 혈압을 재면 정상 범위에 딱 맞거나 다소 높게 나오는데, 의사 선생님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말해 뇌졸중 등에 대한 불안은 좀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약이 잘 맞아 큰 문제가 없다는 김씨는 과거에는 약의 부작용 때문에 크게 고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혈압 진단을 받은 뒤 가까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다가 10년쯤 지나 이사를 했고, 집 가까운 곳의 종합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고혈압약 종류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김씨는 평소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사 뒤 집 정리에 정신이 팔려 마침 약이 떨어진 뒤에 새로운 병원을 찾은 그는 고혈압으로 약을 10년 동안 먹은 사실을 의사에게 설명했습니다. 김씨의 혈압 수치를 본 담당 의사는 혈압 관리가 잘되고 있다며 어떤 종류의 약을 먹었는지 물었지만, 약 이름을 몰랐던 김씨는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씨는 ‘효과가 좋은 약으로 잘 처방해 달라’고 의사에게 주문했고, 평소 먹었던 것과는 다른 색깔의 약을 받아 왔습니다.

이사 및 집 정리에 힘들었는지 김씨는 감기 기운을 느꼈고, 기침이 나자 가까운 동네의원을 찾아 감기에 대한 약을 처방받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기침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콧물이나 가래 등이 나오지 않는데, 밤에 자다가 기침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다시 동네의원을 찾았고 감기약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기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번째로 동네의원을 찾자 의사는 가슴 방사선 촬영 검사 등이 필요하다며 다른 병원을 가볼 것을 권고했습니다. 결국 고혈압약을 처방받은 종합병원의 호흡기내과를 찾아 진찰을 받았고, 이 병원에서 고혈압약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고혈압약을 먹으면서 별다른 부작용을 겪지 못했던 김씨는 약의 부작용으로 기침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혈압약 중에는 혈관의 수축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물질을 막아 혈관의 이완을 유도하는 약이 있는데, 이 약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른기침입니다. 박덕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혈관 수축을 일으키는 물질의 작용을 막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의 경우 관상동맥질환이나 신부전, 당뇨를 가진 고혈압 환자의 치료에 유용하다”며 “혈압을 낮추는 작용뿐만 아니라 심장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어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부작용으로 마른기침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약을 쓴 뒤 우리나라 사람을 포함해 동양인의 경우 5명 가운데 1명가량에서 마른기침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같은 작용을 하면서 혈압을 낮추지만, 마른기침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종류도 나와 있습니다. 고혈압약을 다시 바꾼 이후로는 마른기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고, 혈압 관리는 다시 잘됐습니다.

3년 전쯤 우연히 김씨가 고혈압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요. 그는 고혈압약을 먹지 않을 수 없는지 궁금하다며 “혈압약은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고혈압의 경우 운동이나 식사 조절 등을 통해 혈압을 적정하게 관리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안 되면 약을 먹는 것이지, 약을 먹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씨도 이미 의사에게 들은 적은 있는데, 실천이 되지 않는다며 약이라도 꾸준히 먹는 것이 그나마 관리의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고혈압이 진단된 뒤 담당의사도 운동 및 식사 조절 등과 같은 생활습관 교정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 역시 인터넷 등에서 많이 봐 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살림을 함께 하고 있던 시기라 실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직장을 퇴직하고 나서부터 아파트 단지에 있는 헬스클럽에도 등록을 하고, 시간이 나면 가까운 산을 찾아 등산을 하거나 둘레길도 걷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김씨는 “헬스클럽에 가면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난 뒤 오는 30~40대가 대부분이고 60대 이상은 한둘 있을까 말까 한다”며 “무릎 관절이 많이 좋지 않아 오래는 못 하지만 꼭 걷기나 근육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식사 습관으로는 덜 짜게 먹으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어 신경을 쓰고 있는데, 쉽사리 고쳐지지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들 내외가 가끔씩 찾아올 때 음식을 같이 먹는데 여전히 짜게 먹는다고 한 소리를 하고 간다”며 “젊었을 때에는 요리를 잘한다는 얘기를 곧잘 들었는데, 나이 들수록 맛을 못 느끼는지 음식이 짜진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채소와 과일은 원래도 좋아했고, 고혈압이 진단된 뒤에는 가장 잘 실천하는 것이 이런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씨는 약을 먹지 않고도 혈압이 정상 범위에 오도록 실천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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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고혈압의 관리 기준을 현재보다 더 느슨하게, 즉 조금 더 높게 잡아도 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미국 전문가위원회의 고혈압 관리 가이드라인 8차를 보면 아무런 합병증이 없는 경우 60살 이상에서는 150/90㎜Hg 이하로만 유지하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전 가이드라인은 140/90㎜Hg였는데, 이보다 10㎜Hg가 높아진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약을 먹으면서 이미 130/90㎜Hg 근처로 관리되고 있다”며 “60살이 넘었으니 약을 끊어보고 혈압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고혈압을 담당하는 의사와 상의하도록 권고했는데요. 이후에도 아직 약 끊기 시도를 해 보지는 못하고 약을 계속 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씨는 “주변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 중에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이 나타났다고 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한다”며 “생활습관 교정으로 관리되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혹시 몰라 약을 끊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번에 죽으면 모를까 뇌졸중이라도 생겨 자식들이나 옆에 있는 사람들 괴롭힐까봐 그게 걱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거의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한때는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기도 했던 고혈압이니, 사실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약물 사용과 운동 등으로 혈압 관리가 잘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내외의 많은 조사에서는 고혈압이 있어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약을 먹어도 혈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칫 약값만 낭비하고 합병증 발병 위험은 전혀 낮추지 못하는 이도 많은 것입니다.

“고혈압 때문에 지겹게 약을 먹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 덕분에 건강한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직 자식들에게는 고혈압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제발 유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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