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중 종합병원] 치핵
“항문수술 받을 때만 해도 술 끊고 몸무게 줄인다고 결심했는데, 수술 받은 지 2년쯤 지나니 예전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인천에 사는 이아무개(42·남)씨는 2년여 전, 전화를 해 와 치핵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수술을 잘하는 병원에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치핵 수술에 대한 평가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수술의 난도가 높은 것도 아니어서 집 가까운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씨는 “항문 쪽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며 “혹시 모를 수술 부작용 등이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습니다. 40대만 해도 국내에서 한해 약 15만명이 수술 등 치료를 받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라는 말에 조금은 안심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그는 “알고 보니 회사 동료들 중에도 수술 받은 사람이 몇 명 있어서 그들의 추천대로 병원을 찾아가 수술을 받았다”며 “항문 질환이다 보니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는 치핵 증상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화장실에 가면 만화책 등을 보면서 20분가량 변기에 앉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처음에는 배변에 너무 집중하면 변이 나오지 않아서 만화책 등을 봤는데, 나중에는 화장실 갈 때가 만화책 등을 보는 시간으로 변질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래 변기에 앉아 있는 버릇은 공부하기에 바빴던 고등학교 때 줄었습니다. 이후 대학 시절에도 항문 질환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고 별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대 중반에 군대에서 처음으로 대변에서 피가 비쳤습니다. 그가 스스로 생각한 원인은 과음이었습니다. 그는 “군대에 간다고 친구들과 거의 한달가량 매일 술을 마셨다”며 “과음 탓인지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해 거의 열번 정도 했고 훈련소 입소 뒤 처음 1~2일은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잦은 설사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변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대변을 보면서 출혈이 생겼지만 다행히 2~3일 만에 저절로 사라졌습니다. 이후 군 생활 동안 대변에서 출혈이 생기는 등과 같은 치핵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김종완 한림대의대 동탄성심병원 외과 교수는 “변비도 치핵을 유발하는 원인 질환이지만 설사도 마찬가지”라며 “설사에는 아직 분해되지 않은 위장관의 소화액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항문 점막이 손상되기 쉽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잦은 배변 역시 항문 점막이나 피부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오래 대변보던 남성입대 전 과음으로 설사 뒤 첫 혈변
“친구들과 거의 매일 술 마신 탓” 취업 뒤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고
과음·과로하니 또 혈변 ‘치핵 초기’
“연고 바르고 좌욕…증상 사라져” 40살땐 혈변 뒤 치핵 덩어리 돌출
손으로 밀어넣었지만 결국 수술
“술 끊고 운동하고 싶지만 현실은…” 이씨는 20대 후반에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의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했고, 외부에서 용역을 받는 등 업무에 따라서는 밤을 새울 정도의 야근도 자주 했습니다. 또 회사에는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했는데, 출퇴근길에 각각 40~50분 정도 운전을 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각종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대화 등을 나누면서 오랜 시간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씨는 “업무에서 쉬는 시간이라고는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담배도 하루 한 갑 이상 피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구성원이 대부분 남성 직원이라 한번 회식을 할 때는 거의 밤을 새울 정도로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이씨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도 과체중이었는데,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 10㎏이 늘었습니다. 먹는 양이 많이 늘어서인지 변비 같은 증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운동을 비롯해 하루 적정한 신체활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주말에는 피로 때문에 나서기가 힘들었습니다. 또 그다지 좋아하는 운동도 없었고, 헬스클럽 등 운동시설에 등록해 보기도 했지만 며칠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활을 3년쯤 했을 때 대변을 볼 때 또 출혈이 생겼습니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 전날 폭음을 한 뒤 아침에 대변을 보는데 대변에 피가 비친 것입니다. 20대처럼 ‘하루 이틀 그러다 말겠지’ 하고 병원을 찾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일주일가량 피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직장 근처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항문을 직접 보고 손가락을 넣어 검사한 뒤에 치핵 초기 단계로 진단했습니다. 홍영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외과 교수는 “치핵은 의사가 직접 보거나 손가락을 넣어 진찰한 뒤 진단할 수 있으며, 때로는 항문경이나 직장경 검사를 하기도 한다”며 “항문암 또는 직장암 등과 감별진단을 위해 결장경 또는 조직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치핵은 생긴 위치에 따라 내치핵과 외치핵으로 구분합니다. 또 외치핵과 내치핵이 다 있는 혼합치핵도 있습니다. 우선 내치핵은 항문관 안에서 발생하며 통증이 없이 피가 나거나, 변을 볼 때 치핵 부분이 돌출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홍영기 교수는 “외치핵은 항문 가까이에서 발생하며 매우 민감한 피부로 덮여 있으면서 만성화된 것과 급성으로 혈류가 막혀 혈액이 굳은 덩어리가 만들어진 혈전성 외치핵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씨의 경우에는 내치핵을 진단받았는데, 변을 볼 때 치핵 부분이 돌출되는 증상은 없었습니다. 또 아직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수술까지 할 필요는 없고 평소 생활 속에서 관리법을 잘 하면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치핵에 의한 출혈이 잦아지게 되면 빈혈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 이씨는 그런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우선은 항균 작용을 하는 좌약과 연고제 등을 처방받았고, 배변 뒤에는 온수 좌욕을 챙기는 등 생활습관 교정법을 교육받았습니다. 또 몸무게를 줄이고, 일할 때 1시간에 10분쯤은 자리에서 일어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는 권고도 들었습니다. 물론 과음이나 과로 역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김종완 교수는 “좌욕 요령은 일반 수돗물을 따뜻한 정도로 해서 사용하면 되고, 한번에 10분 정도씩 하루에 수차례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배변 뒤에도 좌욕을 해서 항문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씨는 “연고제 등을 바르고 좌욕 몇 번 했는데, 출혈 증상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출혈이 없어도 내치핵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기에 두세 달 정도는 좌욕을 계속 했습니다. 술도 자제했더니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몸무게가 2~3㎏가량 줄었습니다. 하지만 담배는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일하다가 1시간에 한번씩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피우는 것이 ‘10분 쉬는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뒤로도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하는 등 과로를 하면 대변을 볼 때 피가 나기는 했지만 며칠 좌욕을 하고 술을 자제하면 출혈 증상이 사라져 병원을 찾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대변을 볼 때 또 출혈이 생겼는데, 이번에는 항문 밖으로 뭔가 튀어나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씨는 “좌욕을 하면서 손으로 그 덩어리를 밀어 넣으니 들어가기는 했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다”고 말했습니다. 또다시 좌욕을 열심히 했고, 술을 자제했는데도 며칠 뒤에 대변을 볼 때 항문 밖으로 덩어리가 튀어나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좌욕을 하면서 손으로 밀어 넣으니 간신히 들어가기는 했는데, 불안한 느낌이 들어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를 한 뒤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김종완 교수는 “빈혈이 나타날 정도로 반복적인 출혈이 있거나, 대변을 볼 때 항문 밖으로 덩어리가 밀려 나와서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거나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치핵은 고무밴드로 치핵의 뿌리 부분을 묶어서 치핵 부분으로의 혈액 순환을 막아 치료하는 ‘고무밴드 결찰술’이나 적외선이나 레이저로 치핵 조직을 태워 제거하는 방법 등 비수술적인 치료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술은 항문 부분에 늘어난 혈관과 피부, 점막 조직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통 치핵제거술이라고 부릅니다. 제거한 부분의 점막을 어떻게 처치했느냐에 따라 수술법이 개방식, 반폐쇄술식, 폐쇄술식 등 3가지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또 자동문합기 등을 써서 수술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씨는 수술 뒤에 1~2일 정도 수술 부위의 통증 등을 겪었을 뿐 별다른 부작용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 뒤로 몇달 동안은 치핵 예방 수칙 가운데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등을 보면서 오래 있는 것은 피했고, 폭음을 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항문의 청결 관리를 위해 집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했고, 헬스클럽에 다시 등록해 걷기 운동을 했습니다. 여전히 자동차로 출퇴근은 했지만, 일하다가 10분쯤은 회사 복도라도 걸었습니다. 이렇게 6개월 정도 하자 몸무게가 3㎏가량 줄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의 특성상 담배는 여전히 끊지 못했고, 야근 등 과로 역시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며칠 과로를 하면 헬스클럽도 나가지 않게 됐고, 오히려 술을 마시는 날이 다시 많아졌습니다. 이씨는 수술 뒤로 현재까지는 항문 출혈 등 치핵이 재발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러 생활습관병 위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장 건강검진에서는 7~8년 전부터 비만으로 나왔고, 4~5년 전부터는 혈압도 정상보다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혈당이나 콜레스테롤 수치도 당뇨나 고지혈증 진단까지는 아니었지만 역시 정상보다 높았습니다. 운동 부족이나 과음 등도 검진에서 지적 사항이었습니다. 이씨는 “건강 상태를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운동을 하고 술과 담배를 끊고 야근을 피하는 등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안 된다”며 “치핵 수술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서 실천 의지를 높여 보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씨의 실천을 기대하지만, 건강한 삶을 실천하는 것은 역시 개인의 의지로만은 쉽지 않은가 봅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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