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10 10:34
수정 : 2016.08.10 17:25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여름을 달구고 있다. 4년 동안 혹은 평생 이 순간을 꿈꾸며 견뎌왔을 선수들은 오늘도 자신 앞에 놓인 벽을 깨기 위해 땀을 쏟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물해온 올림픽 120년 역사 속 가장 빛났던 순간 다섯 가지 장면을 모아봤다.
1. 올림픽에 가장 많이 출전한 `올림픽 붙박이’ 이안 밀러 (69·캐나다·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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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의 주인공은 `캡틴 캐나다’ 이안 밀러 선수다. 10번의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1972년 뮌헨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빠짐없이 나섰다. 다만 1980년 냉전의 한복판에서 서방 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집단 불참했을 때는 밀러 역시 출전하지 못했다. 밀러는 그의 말 빅벤(1976~1999년)과 함께 40개 이상의 국제그랑프리 메달을 따고 북미에서 그랑프리와 경마대회 우승 최다 기록도 갖고 있는 북미 최고의 승마 선수로 꼽힌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2008년 장애물 경기 단체전에서 2위를 차지하며 처음이자 유일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것에 그쳤다.
밀러는 이번 리우올림픽행도 꿈꿨으나 말 딕슨이 수술을 받아 출전을 포기했다. 대신 리우에서는 딸 에이미 밀러가 캐나다 승마 대표선수로 출전한다. 밀러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11번째 출전 포부를 밝힌 상태인데, 그때 그의 나이는 73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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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밀러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출전한 모습 I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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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13살 소녀’ 마조리 제스트링 (1922~1992·미국·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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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바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 3m 스프링보드 다이빙에서 1위를 차지한 마조리 제스트링이다. 제스트링은 당시 13살 268일이었다.
그에 앞서 1900년 파리올림픽 때 조정 남자 페어 경기에서 네덜란드팀 타수를 맡았던 소년이 우승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그의 신원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소년은 프랑스 출신으로 7살에 불과했다는 설도, 소년이 9살 혹은 12살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 역시 확인된 바 없다.
현재까지는 명백한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제스트링은 1940년 올림픽에 재도전할 예정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1944년 올림픽까지도 열리지 않아 출전의 기회를 잃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나섰을 때는 아쉽게도 그의 실력이 빛을 바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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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리 제스트링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다이빙을 펼치는 모습 ?I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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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장 오랫동안 깨지지 않은 올림픽 기록 `전설의 점프’ 밥 비먼 (70·미국·멀리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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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가장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은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멀리뛰기에서 밥 비먼이 기록한 8m90이다. 당시 남자 멀리뛰기 세계기록은 8m35로, 비먼은 단숨에 종전 기록보다 55㎝나 멀리 뛰었다.
사실 비먼은 본선 두 번의 점프에서 발구름선을 밟아 실격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결승에 올랐다. 그런데 결승에 진출한 비먼의 첫 점프는 측정기가 닿지 않는 곳까지 나아갔다. 비먼의 착지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측정기가 궤도를 벗어나자 판정위원들은 결국 구식 철 줄자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했고, 이들이 발표한 기록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비먼이 기록을 세운 그 순간까지 멀리뛰기 종목에서는 22㎝의 기록 경신을 위해 33년이나 걸렸다.
비먼의 기록은 해발 2240m에 위치한 멕시코시티의 고도 덕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따랐다. 가벼워진 중력과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비먼을 도왔다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비먼의 기록은 1991년 미국의 마이클 파월이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m95를 뛸 때까지 23년이나 세계 최고 기록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세계기록은 깨졌어도 올림픽에서는 48년째 비먼의 기록이 유지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칼 루이스(미국)가 8m72를 뛴 게 가장 근접한 기록이다.
비먼의 전설적인 점프는 이후 ‘비머네스크’ (Beamonesque)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이는 비먼의 성을 딴 것으로, 운동선수가 상상을 초월한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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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비먼이 전설의 8m90을 난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경기 모습 ?I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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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올림픽 최고령 메달리스트 `72살 노장’ 오스카 스완 (1847~1927·스웨덴·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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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최고령자는 스웨덴 사격 선수였던 오스카 스완이었다.
스완은 올림픽 데뷔 자체가 굉장히 늦은 선수였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출전했을 당시 그는 이미 60살. 그는 러닝 디어 싱글 샷(사슴 모양의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경기) 경기에서 우승해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튿날 단체전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땄다. 스완은 런던에서 동메달도 하나 챙겼다.
노장의 선전은 4년 뒤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서도 이어져, 스완은 금메달 한 개와 동메달 한 개를 품고 돌아갔다.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1920년 안트베르펜(앤트워프)올림픽 당시 그는 일흔두살의 나이로, 올림픽 사상 최고령 선수라는 기록과 함께 은메달을 따 올림픽 최고령 메달리스트가 됐다. 7년 뒤 그는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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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스완(왼쪽 두번째)이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에 출전해 동료들과 서 있는 모습 ?I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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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올림픽 메달을 가장 많이 거머쥔 `메달의 제왕’ 마이클 펠프스 (31·미국·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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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10일 오전 리우올림픽 남자 접영 200m와 자유형 계영 800m에서 생애 20번째, 21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 120년 역사상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금메달 2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보유자이며 올림픽 최다 금메달 기록도 갖고 있다. 종전 최다 메달 기록은 2012년까지 소련의 전설적 체조 선수 라리사 라티니나(82·18개·금9·은5·동4)가 갖고 있었으며, 최다 금메달 기록은 2008년까지 100년 동안 미국 수영선수 레이 유리(금메달 10개)의 것이었다.
7살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고 수영을 권유받았던 어린 소년이 올림픽 무대에 처음 얼굴을 내민 건 2000년 시드니에서였다. 미국 최연소 수영 국가대표였던 펠프스는 4년 뒤 아테네올림픽에서 6관왕에 올랐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전설적인 8관왕의 신화를 썼고 4년 뒤 런던올림픽에서도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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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펠프스(왼쪽)가 8일 오전(한국시각) 2016 리우올림픽 수영 남자 4×100m 자유형 릴레이 결선에서 미국팀의 금메달을 합작한 뒤 팀 동료 케일럽 드레설과 좋아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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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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