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임신한’ ‘결혼한’ ‘결혼 안한’ 여자 선수
‘가장 빠른’ ‘강한’ ‘큰’ ‘참된’ ‘대단한’ 남자 선수
언론과 대중이 남·여 선수를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가 영어로 된 기사·인터넷 게시물 등을 분석해 내놓은 결론입니다. 나이 많고 결혼도 하고 아이(심지어 손자)가 있다는 표현으로, 선수 개인이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기, 한 번 나가기도 어렵다는 올림픽 무대를 5차례 이상 밟은 선수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강한 언니들을 소개합니다.
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퓨처 아레나에서 골키퍼 오영란 선수(왼쪽에서 두번째)가 후배들과 함께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1. 오영란 / 44살·한국 핸드볼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204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에 이어 이번 올림픽까지 다섯 번째 출전.
오영란을 비롯한 여자핸드볼팀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에서 세계 강호 덴마크와 승부 던지기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아름다운 패배’를 했다. 이 스토리는 4년 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으로 만들어졌다.
2004년 올림픽 직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언론의 (반짝) 관심도 고맙기는 하지만 상시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던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핸드볼 3·4위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당시 임영철 감독은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놓고 오영란 등 노장 선수들을 코트에 투입했다. 은퇴를 앞둔 선수들을 위한 배려였다.
8년 만에 오영란이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왔다. 믿고 따르면 임영철 감독의 대표팀 합류 부탁 뿌리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은 정말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다.
“예전엔 아무것도 모르고 운동이 힘들고 하기 싫다는 생각만 들었다. 여전히 힘은 들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새롭고 하나하나 모든 것이 소중하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더는 주어지지 않는 기회다. 체력은 못하지만 끝까지 따라가려 한다.” (2016년 7월19일 <스포츠큐>)
▶11일 여자핸드볼팀은 B조 조별리그 3차전 네덜란드와 경기에서 종료 직전 오영란의 선방으로 32-32로 비겼다. 2패 뒤에 얻은 값진 승점 1점이다. 프랑스를 상대로 한 예선전 네 번째 경기는 8월13일 오전 9시50분에 열린다.
옥사나 추소비티나. 리우올림픽 홈페이지
2. 옥사나 추소비티나 / 41살·우즈베키스탄 기계체조
리우올림픽까지 무려 7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했다. 체조선수로서 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 올림픽에 나선 역대 여자체조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이쯤 되면 살아있는 전설.
옛 소련에서 태어난 추소비티나의 첫 올림픽은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이 지역 나라들은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한다. 소련 국가대표팀이었던 추소비티나도 소속이 바뀐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독립국가연합 대표로 출전해 여자체조 단체전에서 우승한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뒤, 그는 체조를 계속할지 말지 고민했다. 오랜 고민 뒤, 다시 체조를 하기로 결심했고 그 이후 ‘죽을 것 같다’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1996년 애틀랜타·2000년 시드니·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참여했다.
2002년 아들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병을 치료할 여유가 없었던 추소비티나 부부는 치료를 도울 수 있다는 독일 쾰른 스포츠클럽 코치의 제안을 받아들여 독일로 이주했다. 아들이 병과 싸우는 동안, 추소비티나도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2006년 독일 시민권을 획득하면서 2008년 베이징(도마 은메달)·2012년 런던(도마 5위)에 독일 대표로 출전했고 아들의 병도 완치된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은퇴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좀 더 할 수 있다’며 리우올림픽 도전 뜻을 밝혔다. 이번 올림픽엔 우즈베키스탄 대표 선수로 돌아왔다.
“나의 오랜 선수생활은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이다. 나의 긴 선수생명으로 인해 사람들은 나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미 올림픽 메달을 가졌다. 스포츠를 향한 나의 사랑 외에 남기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6년 8월 5일 미국 스포츠채널 )
▶추소비티나는 7일 기계체조 개인종합 예선 도마 종목에서 5위에 올라 ‘목표’라고 했던 결선에 진출했다. 도마 여자 결선은 8월15일 오전 2시46분에 펼쳐진다.
조 파베이. 영국올림픽위원회 선수 소개 페이지 캡처
3. 조 파베이 / 42살·영국 장거리달리기
지금까지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 트랙 종목 선수 가운데 가장 연장자.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다섯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5000m 5위를 기록했다.
규모가 큰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건 불혹을 맞이한 이후다. 201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유럽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만 미터 경기에서 막판 스퍼트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시간 역주행’의 아이콘이 됐다. 1997년 국제무대에 데뷔한 파베이는 주로 중거리를 뛰었으나, 2007년부터 5000m~마라톤에 이르는 장거리 경기에 집중해왔다.
“올림픽에 다섯번 나갈 수 있다니 황홀하다. 지금은 내 나이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트랙으로 내려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달리는 동안 남편은 유모차에 탄 딸을 돌보고 아들은 자전거를 탄다. 우리 가족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훈련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이러한 상황은 내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한다.” (2016년 7월14일 영국 방송 )
▶파베이는 8월12일 밤 11시10분에 열리는 여자 육상 1만 미터 경기에 출전한다.
메리 한나. 호주올림픽위원회 선수 소개 페이지 캡처
4. 메리 한나 / 61살·오스트레일리아 승마 마장마술
올림픽에 나간 역대 오스트레일리아 선수 가운데 최고령. 4살 때부터 말을 타기 시작해 1996년·2000년·2004년·2012년 그리고 2016년까지 올림픽에 다섯 차례 출전했다.
한나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딸과 함께 출전하길 원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 승마 종목에 출전한 남자선수 히로시 호케츠는 당시 71살이었으므로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다. 승마는 올림픽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경기가 진행된다.
“내가 건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내가 몇 살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체격과 유연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승마 경기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게 경쟁하며, 아무도 당신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 유일한 스포츠다.” (2016년 7월23일 호주 일간 <디 오스트레일리안>)
▶한나가 참가하는 개인 마장마술 그랑프리 2일 차 경기는 8월11일 밤 10시부터 시작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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