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생명의 문제가 아닌 것이 없었다. 재개발 문제, 비정규직 문제, 노사 문제 등 시민의 절박한 생존권 문제에서 생명의 존엄성이 국가권력에 의해 가차없이 내팽개쳐졌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생명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문제에서 나와 내 가족과 무관한 사건은 없는 것이다. 경주 지진은 이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묵시록적 퍼포먼스였다.
소설가 지진이 일어난 9월12일 저녁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 4층에 있었다. 외출하고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둔중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흔들리면서 바닥이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지? 느낌이 너무 낯설어 소름이 돋았다. 베란다로 가보니 빨래 건조대에 걸린 옷걸이가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지나간 듯했다. 티브이를 틀자 손석희 앵커가 경주 지진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조금 전의 그것이 지진이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멍했다. 지진인 줄 몰랐던 것은 처음 겪는 경험이었고,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라는 고정관념의 영향인 듯했다. 지진 뉴스를 보고 있는데 돌연 벽과 천장이 흔들렸다. 티브이에서는 손석희 앵커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시민의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벽과 천장이 저렇게 계속 흔들리면 무너지겠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원전이었다. 몸이 느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한국은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감시 대상 1호 국가다. 원전의 국토 면적당 설비 용량, 단지별 밀집도, 반경 30㎞ 이내 인구수 모두 세계 1위이기 때문이다. 고리원전의 경우 반경 30㎞ 이내에 380만명이 거주한다. 참사 전 후쿠시마 거주 인구는 17만명이었다. 원전의 밀집도가 높을수록 사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지난 6월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를 승인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정부는 경주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 양산단층과, 고리원전 단지와 인접한 일광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연구 결과를 알고도 숨겼다. 원전을 짓기 위해 지진 발생 가능성을 은폐한 것이다. 원전 건설 허가 요건 중 하나인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에서 법이 요구하는 ‘중대사고’ 영향평가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승인 과정에서 이 평가가 없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캐나다 원자력공사 등에서 원전설계 기술자로 일했던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의 시뮬레이션 결과 신고리 5·6호기에 중대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7일 이내 1만6240명이 죽고, 50년 동안 280만명이 방사성 노출로 인한 암 등의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그린피스는 지난 9월12일 서울행정법원에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활성단층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에 신규 원전을 추가하면서 지진 위험성 평가가 불충분했고, 주민 의견도 수렴하지 않는 등 절차상의 문제도 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경주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오늘날 30여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종말을 앞당기는 데 충분한 개수다. 그중 20퍼센트가 지진 위험 지역에 있다. 소비는 끝없이 증가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발전이라 부른다. 살상무기가 개발되어도 그들에게는 발전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은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체르노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쓴 책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미래를 닮았다.” 201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 <체르노빌의 목소리> 한국어판 서문의 일부다. 그의 모국 벨라루스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국토 면적의 3분의 2가 방사능 오염지역이 되었고, 그 후 10년 동안 사망률이 23.5% 증가했다. 비극적 사건의 유일한 가치는 인간으로 하여금 성찰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데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참사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참사에 이어 문명의 존재 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묵시록적 사건이었다. 경주 지진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생활 방식을 요구한다.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생명의 문제가 아닌 것이 없었다. 재개발 문제, 비정규직 문제, 노사 문제 등 시민의 절박한 생존권 문제에서 생명의 존엄성이 국가권력에 의해 가차없이 내팽개쳐졌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생명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문제에서 나와 내 가족과 무관한 사건은 없는 것이다. 경주 지진은 이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묵시록적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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