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고통은 ‘박정희 신화’의 폐해를 올바르게 극복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불행이었다. 이 불행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아버지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픔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뜯어먹는 에리시크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음식을 씹던 이빨이었다. 그 이빨이 광화문광장 허공에 걸려 있는 광경을 떠올리면 두렵다.
소설가 검찰은 11월20일 구속기소한 최순실 등의 공소장에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주범으로 지목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게이트로 변화한 것이다. 두 사람이 저지른 행위들을 들여다보면 신성한 나무를 훼손한 벌로 아무리 먹어도 허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저주를 받아 끝내는 자신의 몸을 뜯어먹는 그리스 신화 속의 에리시크톤이 떠오른다. 그들이 아귀처럼 삼키는 동안 국정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국민을 불안과 고통 속으로 빠뜨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박정희 신화’였다. 대선을 앞둔 2012년 11월14일 박정희 탄생 기념행사에서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금오산에는 두 명의 대통령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이 이뤄지도록 여러분이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11월14일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 했고, 극우논객 조갑제는 “유신시대가 없었더라면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은 없다. 박정희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 등과 같은 반열에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10대 지도자 중의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해방 이후 크게 세 종류의 정치세력이 있었다. 민족주의 보수우파와 사회주의 세력, 친일세력이었다. 일제에 저항한 민족주의 보수우파와 사회주의 세력이 협력하여 친일세력을 몰아낸 후 두 세력이 경쟁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였다. 하지만 냉전체제는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을 구실로 친일세력을 체제의 핵심으로 끌어들였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등에 올라탄 친일세력은 사회주의 세력은 물론 민족주의 보수우파까지 사회주의로 몰아 제거하고 민족주의 보수우파의 가면을 썼다. 그들의 권력은 4·19혁명으로 무너졌지만 5·16 쿠데타로 다시 일어섰다. 박정희를 비롯한 쿠데타 핵심인물들이 만주 신경군관학교 출신이었던 것이다. 1942년 3월 만주 신경군관학교 졸업식장에서 수석 졸업생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일본 천황과 만주국 황제 부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는데, 그가 박정희였다. ‘박정희 신화’의 핵심은 경제성장이다. 수출입국, 재벌 중심 체제, 토건경제, 선성장 후분배로 요약되는 박정희 경제정책이 비약적 성장을 이끌어내어 한국 사회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압축성장 과정에서 재벌의 비대화, 적대적 노사관계, 관치금융, 정경유착,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등 구조적 모순이 누적되고 있었는데, 7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계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이 사적 욕망을 위한 권력체제로 전락한 것은 1969년 3선개헌을 감행하면서였다. 1970년 11월의 전태일 분신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역사의 전환기에서 역사가 가야 할 방향을 밝힌 등불이었다. 박정희는 그 등불을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외면했다. 경제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양극화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원인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중소기업의 피폐화, 적대적 노사관계로 인한 대기업의 고용 회피다. 1997년 외환위기와, 지금까지 이어지는 양극화의 고통은 ‘박정희 신화’의 폐해를 올바르게 극복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불행이었다. 이 불행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아버지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의 공소장에 대해 청와대는 “객관적인 증거를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진행될 특검 수사에서 대통령의 무고함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기가 막히도록 환상적인 언어다. 이 환상적 언어가 황폐하게 느껴지는 것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참 많이 했다. 가장 가슴 아픈 거짓말은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에게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한 거짓말이다. 청와대가 다시 기상천외한 거짓을 내뱉음으로써 시민들이 켜는 광장의 촛불은 한층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배고픔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의 몸뚱이를 뜯어먹는 에리시크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음식을 씹던 이빨이었다. 그 이빨이 광화문광장 허공에 걸려 있는 광경을 떠올리면 두렵다. 인간이라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가 내면에 품고 있는 심연에 대한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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