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대통령께서 언론을 망친 파괴자라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 다큐 영화 <공범자들> 시퀀스의 대사이다. 질문하는 이는 <공범자들>의 감독이자 해직언론인 최승호이고, 답하는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질문을 듣는 순간 그가 짓는 얼굴 표정이 압권이다. 돌이켜보면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이명박의 집착은 특별했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면 먼저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언론 장악의 첫 번째 작업이 2008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와 자신의 측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이었다. 그해 7월 역시 측근인 구본홍을 <와이티엔>(YTN) 사장으로 앉힌 이명박은 8월에는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을, 2010년 2월에는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을 끌어내린 후 권력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이들을 앉혔다. 사기업 메이저 언론들이 그들의 상업적·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들이 무너진 것이다. 언론은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보다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이 담론들의 건강한 순환이 민주주의라는 생명체를 건강하게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부역 언론들은 거짓 담론을 생산하여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였다. 이명박 정권이 집요하게 추진한 4대강 사업이 야당과 시민단체, 국민들의 반대에 직면하자 종북좌파라는 거짓 담론을 유포시켜 반대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 2646명의 정리해고와 77일의 파업, 경찰의 폭력적 강제진압에 뒤이은 해고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은 한국 사회가 건강한 생명체로 기능하기 위해 지녀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는 표징이었다. 그것에 대해 몇몇 진보 언론들은 현실에 접근하는 담론을 생산해내려고 애를 썼으나 공영방송을 비롯한 메이저 언론들이 기존의 정치적·이념적 잣대로 보도함으로써 깊이 병든 한국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담론의 확산을 막았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황폐해진 저널리즘이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극적인 몰락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언론이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 공급상’의 역할을 하는 동안 박근혜와 최순실은 국정을 마음껏 농단했다. 민주주의의 무너짐은 국민의 불행만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정권에도 불행이다. 언론의 건강한 담론은 과거와 현재를 올바르게 연결시킴으로써 미래를 비추는 등불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을 언론이 제대로 했다면 이명박 정권이 브레이크 없는 권력열차를 타고 국민과 국토를 그토록 폭력적으로 헤집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황폐해진 저널리즘이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극적인 몰락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메이저 언론들이 대선 후보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를 얼마나 휘황하게 미화했는지 생각해보라. 언론이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 공급상’의 역할을 하는 동안 두 여인은 국정을 마음껏 농단했다. 언론이 생산하는 담론에 국민이 성찰하고 질문하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들의 희생이 캄캄한 한국 사회에 빛을 비춘 것이다. 공영방송 수장과 간부들이 공영방송을 되찾으려는 언론인들에게 가한 행위,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팽개친 그들의 참담한 행위들과, 저항 언론인들의 치열하고 끈질긴 싸움은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인으로서 ‘상식적인 소명’을 지키고자 권력과 싸워온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의 싸움이 국민으로부터 잊히는 것이었다. 그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지금 상영 중인 <공범자들>과 2017년 1월에 상영한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만들게 한 것이다. 언론 부역자들의 전횡으로 공영방송이 황폐화되어가는 과정과 방송 언론인들의 고통스러운 저항의 역사가 두 다큐 영화에 생생히, 아프게 담겨 있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의 당선이 이명박 정권의 공영방송 파괴에 저항하고 있던 언론인들을 얼마나 절망케 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의 절망과는 두께와 깊이가 다른 절망이었다. 이용마 엠비시 해직기자의 암 투병은 그들의 절망을 상징한다. 언론인의 절망은 민주주의의 절망이다. 케이비에스, 엠비시 두 공영방송 언론인들이 고대영, 김장겸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결의한 9월 총파업에 국민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영방송의 진짜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칼럼 |
[정찬, 세상의 저녁] 공영방송 총파업과 민주주의 |
소설가 “대통령께서 언론을 망친 파괴자라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 다큐 영화 <공범자들> 시퀀스의 대사이다. 질문하는 이는 <공범자들>의 감독이자 해직언론인 최승호이고, 답하는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질문을 듣는 순간 그가 짓는 얼굴 표정이 압권이다. 돌이켜보면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이명박의 집착은 특별했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면 먼저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언론 장악의 첫 번째 작업이 2008년 3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와 자신의 측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이었다. 그해 7월 역시 측근인 구본홍을 <와이티엔>(YTN) 사장으로 앉힌 이명박은 8월에는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을, 2010년 2월에는 엄기영 <문화방송>(MBC) 사장을 끌어내린 후 권력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이들을 앉혔다. 사기업 메이저 언론들이 그들의 상업적·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들이 무너진 것이다. 언론은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보다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이 담론들의 건강한 순환이 민주주의라는 생명체를 건강하게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부역 언론들은 거짓 담론을 생산하여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였다. 이명박 정권이 집요하게 추진한 4대강 사업이 야당과 시민단체, 국민들의 반대에 직면하자 종북좌파라는 거짓 담론을 유포시켜 반대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 2646명의 정리해고와 77일의 파업, 경찰의 폭력적 강제진압에 뒤이은 해고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은 한국 사회가 건강한 생명체로 기능하기 위해 지녀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는 표징이었다. 그것에 대해 몇몇 진보 언론들은 현실에 접근하는 담론을 생산해내려고 애를 썼으나 공영방송을 비롯한 메이저 언론들이 기존의 정치적·이념적 잣대로 보도함으로써 깊이 병든 한국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담론의 확산을 막았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황폐해진 저널리즘이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극적인 몰락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언론이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 공급상’의 역할을 하는 동안 박근혜와 최순실은 국정을 마음껏 농단했다. 민주주의의 무너짐은 국민의 불행만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정권에도 불행이다. 언론의 건강한 담론은 과거와 현재를 올바르게 연결시킴으로써 미래를 비추는 등불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을 언론이 제대로 했다면 이명박 정권이 브레이크 없는 권력열차를 타고 국민과 국토를 그토록 폭력적으로 헤집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황폐해진 저널리즘이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권의 극적인 몰락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메이저 언론들이 대선 후보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를 얼마나 휘황하게 미화했는지 생각해보라. 언론이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 공급상’의 역할을 하는 동안 두 여인은 국정을 마음껏 농단했다. 언론이 생산하는 담론에 국민이 성찰하고 질문하기 시작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들의 희생이 캄캄한 한국 사회에 빛을 비춘 것이다. 공영방송 수장과 간부들이 공영방송을 되찾으려는 언론인들에게 가한 행위,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팽개친 그들의 참담한 행위들과, 저항 언론인들의 치열하고 끈질긴 싸움은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인으로서 ‘상식적인 소명’을 지키고자 권력과 싸워온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의 싸움이 국민으로부터 잊히는 것이었다. 그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지금 상영 중인 <공범자들>과 2017년 1월에 상영한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만들게 한 것이다. 언론 부역자들의 전횡으로 공영방송이 황폐화되어가는 과정과 방송 언론인들의 고통스러운 저항의 역사가 두 다큐 영화에 생생히, 아프게 담겨 있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의 당선이 이명박 정권의 공영방송 파괴에 저항하고 있던 언론인들을 얼마나 절망케 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의 절망과는 두께와 깊이가 다른 절망이었다. 이용마 엠비시 해직기자의 암 투병은 그들의 절망을 상징한다. 언론인의 절망은 민주주의의 절망이다. 케이비에스, 엠비시 두 공영방송 언론인들이 고대영, 김장겸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결의한 9월 총파업에 국민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영방송의 진짜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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