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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9 18:42 수정 : 2018.03.29 19:23

남과 북은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참사를 겪으면서 반공과 반미라는 증오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했다.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한국군의 학살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품고 있는 증오의 발현이었다. 이 증오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 제주 4·3 비극과 만난다.

정찬
소설가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3월23일,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세 번째 사과다. 문 대통령은 공개적이고 명확한 사과를 하려 했으나 베트남 정부가 동족상잔 등 내부 문제의 부각을 우려해 사과 수위를 크게 낮추었다고 전해졌다. 현대사에서 참혹한 전쟁이 많았음에도 베트남 전쟁이 스페인 전쟁과 함께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로 일컬어져온 이유와, 전쟁이 끝난 즉시 위령 기념 건조물을 지어 바치는 것을 엄숙한 의무로 생각해온 미국 국민이 베트남 전몰장병에 대해서만은 10년 동안 기념비조차 세우는 것을 꺼린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베트남 전쟁의 뿌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북베트남과 인민해방전선 지도층 대부분이 프랑스 식민정권에 항거한 민족운동가였던 반면 남베트남 지도층은 식민정권의 관리이거나 군인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의 ‘베트남 평정계획’ 수석고문관이었던 존 폴 밴은 “남베트남 정부가 대중적 정치기반을 갖지 못한 이유는 프랑스 식민정부체제를 계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의 대다수 국민들이 인민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의 노선을 지지한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해방을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미국과 남베트남은 북베트남과 인민해방전선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베트남인들과 싸워야 했다. 비무장 민간인조차도 적이었던 것이다. 전쟁이 참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1969년 여름, 미국 공군은 메콩강 삼각지역에 있는 끼엔호아를 집중 폭격했다. 폭격 후 9사단의 50대 무장 헬리콥터는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사격 목표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었다. 일본 <아사히신문> 특파원 혼다 가쓰이치는 그것을 ‘아시아인 사냥’이라고 표현했다. 공식기록에 따르면 ‘적’의 사망자 수가 1만899명인 데 비해 포획된 무기는 748정에 불과했다.

베트남어에 능통한 미국인 퀘이커교도 다이앤과 마이클 존스는 5년간 한국군 작전지역에서 집중조사를 한 결과 미 해병이 개인 병기로 100명에 가까운 민간인을 학살한 밀라이 사건과 비슷한 규모의 학살 사건을 12건 밝혀냈다. 소규모 학살 사건은 이보다 훨씬 많으며, 학살의 희생자는 대부분 여자 어린이 노인이었다. <뉴욕 타임스> 로버트 스미스 기자는 ‘동맹군에게 맡겨진 베트남 살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군은 자신들이 점령한 마을에서 무조건 10분의 1의 민간인을 사살한다”고 썼다. 어떤 한국군 장교는 “물을 퍼내어 고기를 잡는 것이 자신들의 전술”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물이란 민간인이며 고기는 공산주의자였다.

매카시즘과 베트남 전쟁으로 표상되는 미국의 냉전 이데올로기는 팍스 아메리카나 추구의 이념적 근거였다. 그것이 최초로 적용된 곳은 한반도였다.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적 대립 속에서 남과 북은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참사를 겪으면서 반공과 반미라는 증오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했다.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한국군의 학살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품고 있는 증오의 발현이었다. 이 증오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 제주 4·3 비극과 만난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군경 토벌대가 파악한 무장 제주도민의 수가 500여명에 불과했으나 학살당한 사람은 최소 3만여명이었다. 미군의 한 보고서는 토벌 성공 이유를 ‘민간인 대량살육계획’에서 찾았다. 베트남 전쟁을 응시하는 행위는 곧 냉전의 충돌지점인 한반도의 비극을 응시하는 행위인 것이다.

2014년 3월7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3·8 세계 여성의 날 및 ‘나비기금’ 발족 2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이제라도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범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것이 전쟁 범죄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학살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하면서 “일본 정부에 전쟁 범죄 책임을 물어온 정대협이 베트남에서 자행한 우리 군대의 잘못을 뉘우치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2017년 7월25일에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제1회 길원옥 여성평화상 수상자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국내에 최초로 알린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를 선정했다. ‘길원옥 여성평화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 할머니가 ‘제1회 이화기독여성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받은 상금 100만원을 씨앗기금으로 제정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응시하는 행위는 인류의 가장 큰 죄악인 전쟁 자체를 응시하는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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