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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22 17:13 수정 : 2017.01.22 19:05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20년 넘게 정신분석이라는 일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 틀에서만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인간의 삶은 무의식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 의해서도 형상과 내용이 변화된다. 그런데도 무의식만 붙잡고 있다 보면, 관점과 집중의 균형이 깨지고 어떤 극단으로 빠진다. 이런 오류를 범해 온 정신분석가들을 경책하는 용어가 심리주의(Psychologism)다. 환경과 맥락, 경향과 자극과 같은 외부 현실의 조건, 정신에서 차지하는 의식의 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모든 행위의 근거를 심리적 이유에서만 찾으려는 태도를 말함이다. 인간을 무의식의 외부실행자라고만 단정하는 태도를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무의식이 모든 행위를 결정해 버린다고 생각하면 참 편리하기도 하다. 종종 자신의 무의식을 이인화(離人化)시켜, 자신의 그릇된 행위를 내 결정이 아닌 것, 통제되지 않는 것에 의한 결과임을 항변한다. 가장 흔히 하는 ‘나도 모르게 그리했다’는 말은, 잘못된 행위의 책임을 탕감시키는 좋은 근거가 된다. 흡사 범죄행위에서 심신미약 상태가 정상참작의 이유가 되듯이 말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가들은 더더욱 무의식에 천착한다. 집요하게 무의식과 사랑에 빠진다. 무의식을 점령하면 인간의 삶을 홀연히 바꿀 수도 있으리라는 잘못된 믿음을 종종 가지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삶을 변화시키는 결행은 명징한 의식 상태일 때 발생하는 것 같다.

카를 융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다양한 해석과 이해의 여지가 있는 잠언이다. 더불어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을 어떤 인간이 되게 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을 ‘선택’이 아닐까 짐작한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바와 같이, 작은 선한 결정과 행위의 결과물들이 쌓여 선한 사람을 만들고, 계속된 악한 결행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악으로 구성하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결행이란, 결정과 더불어 박차고 일어나 행위로 옮기는 것이다. 판단이라는 사고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한 결행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선한 결행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결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더 나은 결정’과 ‘올바른 결정’.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더 힘이 세질 수 있고, 더 으리으리해질 수 있다고 믿는 쪽으로 결정하는 것, 그런 원칙들이 대체로 더 나은 결정의 핵심이 된다. 하지만 더 나은 결정은 종종 불행의 시작이 된다.

올바른 결정은 인간을 고통에 빠트릴 때도 있지만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더 나은 결정은 획득과 축적을 구걸하지만, 올바른 결정은 나눔과 연대를 실현한다. 나의 이득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생각하고, 결국 ‘당신과 나’를 선택한다.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일 때도 많지만, 명징한 의식의 결심과 행위로도 선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여러 정치인의 굴욕스런 몰락과 노욕의 몸부림을 치는 한 대권 잡룡을 보면서, 자신만을 위한 더 나은 결정들이 저렇게 노망의 삶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삶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삶이 그 선택들의 결과물이다. 욕망이 늙으면 노망이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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