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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9 17:30 수정 : 2017.02.19 19:06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나 자신의 개인 정신분석 작업이 8년째 들었을 무렵이었다. 혹독하다 할 만한 수련 과정도 진작에 마쳤고, 초보 분석가의 서?도 익숙해져서 조금은 더 침착해진 시기였던 것 같다. 게다가 주 2~3회 이상의 분석을 오랫동안 받아왔으니 분석도 분석가도 아주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카우치에 깊숙이 몸을 숨기고 눈을 반쯤 뜬 채 연상에 따른 답과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아주 잠깐, 3~4초 아니면 길어도 10초 정도 분석가가 손톱 옆에 삐져나온 손톱 가시를 뜯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문답에 불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석가의 주의가 완전하게 내게만 집중되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아, 이분이 지난 8년 동안 내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구나”라는 것이었다.

아주 짧은 아주 약간의 부주의의 순간이 선사한 그 선명한 대비에 의해, 나는 그녀가 내게 얼마나 집중해왔는가를 아플 정도로 명징하게 느꼈다. 나는 그때부터 겨우 윤리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 같다. 윤리란 도덕이나 준법정신과는 비견할 수 없는 고귀한, 하지만 그 어떤 상식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단 한순간도 피분석가에 대한 주의와 집중을 흩트리지 않는 분석가의 윤리란 당연한, 상식적인 일이지만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

정신분석가 또는 상담가에게는 엄수하도록 권장되는 윤리강령이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지켜 마땅할 윤리에 대한 매뉴얼이다. 내담자의 정보에 대한 철저한 비밀 엄수, 내담자와의 성적 관계 금지, 상담료 이외의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기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조밀한 윤리강령이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분석가 당사자의 생각과 마음까지 제어할 수는 없다.

상담의 기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석가의 윤리다. 모든 것을 다 밀쳐놓고, 오직 윤리의 핵심은 내 앞에 앉은 저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겠다는 의지 안에서만 구현되며, 또한 변화의 가장 강력한 원인이 된다. 이 힘겨운 일은 사실 ‘상식’과 이음동의어다.

어떤 대선 주자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식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국민들만큼만이라도 잘 알고 있기를 바란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윤리적이며 상식적이라 할 수 있겠다. 윤리에 대한 엄중한 주의, 책임에 대한 각고의 성찰이 성성한 사람과 함께 이 사회를 다시 회복시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종종 나 자신과 수련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내담자라면 당신 자신 같은 사람을 분석가로 선택할 수 있겠는가? 대선에 나선 온갖 잠룡과 잡룡과 토룡들에게도 묻는다. 당신 같은 사람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살아도 국민으로서 당신은 행복하겠는가?

더불어, 탄핵을 곧 앞둔 박근혜씨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령한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만 말하지 말고 무엇을 하지 않았고 왜 하지 않았는지, 그것을 밝혀라. 책임이란, 무엇을 했는지 항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성찰함으로써만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엄동설한 길바닥에서 2012년에 당신을 낙선시키지 못한 책임을 혹독하게 지고 있다. 앞으로는 상식과, 상식을 지키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단 한순간도 주의를 흩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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