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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4 18:29 수정 : 2017.05.14 19:09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30년 전, 내가 겪은 일이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선거가 다가오자 진보적인 대학생들은 곧 공정선거감시단을 구성해 전국적인 선거참관인으로 활동했다. 당시 시골에서는 선거관리를 하는 공무원과 여당 당원들이 협잡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투표소 참관인이 되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라도 모두가 정당원이 되어야만 했기에 내 뜻과 상관없이 평민당(김대중 후보) 당원이 되었다. 나는 경북 예천에 배정을 받아 선거 전날 저녁에 예천 가톨릭농민회 사무실에 도착했다. 흡사 자대배치 받는 신병의 기분이었다. 농민회가 정해준 지역을 호명하면 우리는 배치된 면의 동이나 리로 알아서 각자 찾아가야 했다. 추운 겨울에 배는 고프고 길은 낯설고… 비장함은 어디 가고 서글픔만 가득했다.

나도 시골 마을 한 곳에 배치를 받았는데 다행히 그 마을 농민회 분께서 읍내에 직접 나오셔서 오토바이에 태워 마을로 데려가주셨다. 그분은 당시 50대 중반이었는데, 놀랍게도 김대중씨 지지자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의 연설을 듣고 나서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의 모멸과 냉대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으셨단다. 그 마을에서 나고 자라서 고향 밖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고, 농사를 유일한 직업으로 알고 사시는 경상도 시골 분이 ‘전라도 빨갱이’를 지지하다니, 당시로는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아저씨는 젊은이가 좋은 일 한다고, 다들 취직 준비 하느라 바쁠 텐데 이렇게 촌구석까지 와서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귀한 고기반찬에 술까지 대접해 주셨다. 술이 거나해지자 내게 편히 자야 한다며 안방까지 내주셨다. 사양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날 밤, 술은 취했지만 군사독재를 끝내는 마지막 밤이 되기를 바라며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새벽 마당에 나섰더니, 달빛이 왜 그리도 밝던지…. 문득 내려다본 그분의 집 앞에는, 금모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홀연히 내 젊음이 서러웠고, 이 나라가 사무쳤고, 정의가 그리웠다. 그보다, 달빛을 환대하는 금모래 강물은 아저씨만큼이나 굳세고 소박하게 아름다웠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날에 나는 정신의 스위치를 절반 이상 꺼놓았다. 느낌을 살려두면 내가 못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자각시키는 자극을 모두 차단하자 세상은 물속처럼 조용했고, 세상으로부터 며칠간 나를 격리시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득 (2012년으로부터) 25년 전 그날 밤이 떠올랐다.

세상은 차단할 수 있었지만 내 안의 기억은 금지시킬 수 없었다. 무심코 흥얼거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콧노래 자락에 실려 그날의 아저씨가 찾아오고, 금모래 낙동강이 가슴에 흐르기 시작했다. 꺼뒀던 스위치가 자동으로 열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낙동강만큼이나 굳건히 흐르던 그 아저씨 앞에 부끄러워 한참을 울었다. 다시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5년이 지났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우리는 당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그저 도울 뿐이다. 만에 하나 당신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 경상도 아저씨처럼 굳건히 우리 삶을 지키며, 또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킬 것이다. 민주주의는 대통령 한 명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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