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지난달 서울 서촌의 서점 림에서는 20대가 주축이 된 철학 세미나 팀이 한 달 동안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세대간 대화, 여성과 나라라는 주제 등으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학벌사회에 대한 주제의 세미나에서 한 참석자가 인터넷 매체에서 읽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커플이 카페에 앉아 있는데 다른 커플이 와서 자리를 좀 비켜 달라는 것이다. 앉아 있던 커플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신이 공부를 좀 해야 하니 비켜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리 양보를 요구한 커플이 뭔가를 꺼내서 보여 주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서울대 학생증이었다. 다행히(?) 앉아 있던 학생도 마침 서울대생이어서 학생증을 보여 줌으로 자리를 요구한 그 서울대생을 퇴치했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이와 비슷한 내용이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 대나무 숲에 올라왔고 유사한 일을 경험했다는 댓글들도 우수수 달려 있다. 자리를 요구받은 학생들이 만약 서울대 학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필자의 짐작으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자신만의 뜻이 있어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젊은이들보다는, 고교 때 성적이 서울대 입학을 노려 볼 만했으나, 결국은 서울대 입학의 꿈을 이루지 못한 명문이라 불리는 사립대 학생들의 열패감이 오히려 더 심하지 않을까 싶었다(물론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이런 일로 열패감 따위는 느끼지 않을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며칠 후, 필자는 좀 더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지금은 교육사업을 하는 서른 중반의 친한 후배를 만나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후배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실제 경험을 들려주었다. 어느 전시회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뒷사람이 자꾸 부주의하게 가방으로 후배의 등을 치더란다. 정중히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갑자기 그 남자가 육두문자를 날리며 후배더러 ‘지질하게 공부도 못하게 생긴 게 어디서 깝치냐’고 공격을 했다고 한다. 당혹스러웠던 후배는 당신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길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더러 그런 말을 하냐고 물었더니 ‘너 따위는 꿈도 못 꿀 명문 대학을 다니니 까불지 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물었더니, 그 남자는 학생증을 꺼내고 싶어서 움찔움찔하더니 급기야 자기는 ‘사립 명문대생’이라고 하며 학생증을 내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배가 서울대 법대생이었다는 것이었다. 후배는 조용히 자기 학생증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기세등등하던 사람이 태도가 돌변하여 갑자기 머리를 굽신거리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란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비굴해 보여서 후배는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고 했다. 서울대 학생증을 내밀며 자리를 요구한 그 젊은이들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런 비유를 하면 금세 수긍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면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대감, 판서의 자제로서 성균관 유생인 젊은이들이 주막에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자 당장 상것들은 자리를 비우라고 요구하는 장면들 말이다. 학생증이 마패고, 대학이 깡패고, 학벌이 권력인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음서제를 생각하면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생경스럽지도 않다. 학벌 권력에 대한 극악스러움은 우리 정신을 근대는커녕 조선 시대도 못 벗어나게 한 것 같다.
칼럼 |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학벌계급 |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지난달 서울 서촌의 서점 림에서는 20대가 주축이 된 철학 세미나 팀이 한 달 동안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세대간 대화, 여성과 나라라는 주제 등으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학벌사회에 대한 주제의 세미나에서 한 참석자가 인터넷 매체에서 읽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커플이 카페에 앉아 있는데 다른 커플이 와서 자리를 좀 비켜 달라는 것이다. 앉아 있던 커플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신이 공부를 좀 해야 하니 비켜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리 양보를 요구한 커플이 뭔가를 꺼내서 보여 주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서울대 학생증이었다. 다행히(?) 앉아 있던 학생도 마침 서울대생이어서 학생증을 보여 줌으로 자리를 요구한 그 서울대생을 퇴치했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이와 비슷한 내용이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 대나무 숲에 올라왔고 유사한 일을 경험했다는 댓글들도 우수수 달려 있다. 자리를 요구받은 학생들이 만약 서울대 학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필자의 짐작으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자신만의 뜻이 있어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젊은이들보다는, 고교 때 성적이 서울대 입학을 노려 볼 만했으나, 결국은 서울대 입학의 꿈을 이루지 못한 명문이라 불리는 사립대 학생들의 열패감이 오히려 더 심하지 않을까 싶었다(물론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이런 일로 열패감 따위는 느끼지 않을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며칠 후, 필자는 좀 더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지금은 교육사업을 하는 서른 중반의 친한 후배를 만나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후배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실제 경험을 들려주었다. 어느 전시회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뒷사람이 자꾸 부주의하게 가방으로 후배의 등을 치더란다. 정중히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갑자기 그 남자가 육두문자를 날리며 후배더러 ‘지질하게 공부도 못하게 생긴 게 어디서 깝치냐’고 공격을 했다고 한다. 당혹스러웠던 후배는 당신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길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더러 그런 말을 하냐고 물었더니 ‘너 따위는 꿈도 못 꿀 명문 대학을 다니니 까불지 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물었더니, 그 남자는 학생증을 꺼내고 싶어서 움찔움찔하더니 급기야 자기는 ‘사립 명문대생’이라고 하며 학생증을 내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배가 서울대 법대생이었다는 것이었다. 후배는 조용히 자기 학생증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기세등등하던 사람이 태도가 돌변하여 갑자기 머리를 굽신거리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란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비굴해 보여서 후배는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고 했다. 서울대 학생증을 내밀며 자리를 요구한 그 젊은이들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런 비유를 하면 금세 수긍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면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대감, 판서의 자제로서 성균관 유생인 젊은이들이 주막에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자 당장 상것들은 자리를 비우라고 요구하는 장면들 말이다. 학생증이 마패고, 대학이 깡패고, 학벌이 권력인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음서제를 생각하면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생경스럽지도 않다. 학벌 권력에 대한 극악스러움은 우리 정신을 근대는커녕 조선 시대도 못 벗어나게 한 것 같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