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2.11 17:51 수정 : 2018.02.11 19:11

이승욱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가부장, 마초, 안하무인, 소통 불능, 일벌레, 예비 실업자, 무능, 화내는 사람, 비아그라, 밴드와 동호회, 일주일에 한 번만 보면 좋을 사람, 시어머니 아들, 쩍벌남, 술 냄새, 잠재적 성추행범, 개저씨….

세상의 어떤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젊은이들은 필자를 포함한 중년의 남성들을 이렇게 묘사하거나, 이름 부른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한때 펼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나 기타리스트, 여행가가 되거나 시를 쓰고 싶은 소년인 적이 있었다. 엄마의 사랑이었고, 누나의 솜털 같은 동생이었고, 한밤중 뒷간이 무서워 노래를 부르며 응가를 하던 그런 소년이었다.

까마귀 떼처럼, 무채색의 유니폼 양복을 입고 출근을 하며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일상을 살더라도 우리도 인간이고 원하는 무엇이 있다. 별다방 커피를 즐겨 마시는 내 딸은 식당의 공짜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아버지를 궁상떤다고 비아냥대지만 그래, 너희들이라도 그렇게 살게 하기 위해,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고만고만한 처지의 동창들은 이렇게 자문한다. 그래도 그렇지, 한때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앞장서 화염병을 던지고 독재 타도의 맨 앞줄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젊음이 있었는데, 어쨌든 세상을 조금은 변화시켰고, 그 주역에 이름을 올린 경험이 있는데, 내 삶이 이렇게 지리멸렬해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술 힘을 빌려 우리는 자답한다. 민주당 대통령이 되면 아파트 가격 떨어지니 보수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동료의 주장에, 썩어 빠진 생각이라며 화를 내면서도 사실은 투표장에서 개발 독재의 상징인 이명박에게 투표한 자신의 비열함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 노제에 참석해서 한없이 울었던 이유는 그의 죽음이 슬퍼서이기도 했지만, 내 삶이 하도 비루해서였다고 자백한다. 증세 없이 경기 부양한다는 보수당의 거짓말에 속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니면서 지역구는 보수당에 표를 주고 정당 투표는 진보적인 정당에 표를 주었다며 자위하던 자신은 애써 지워 버리고 싶다. 다음 투표에도 또 그러지 않을 자신이 없다.

우리는 이렇게 속물이 되었다. 더 잘살게는 되었는지 몰라도 더 여유는 없어졌고, 내 명의로 된 더 넓은 집을 가졌지만 그 집 어디에서도 정서적 공간은 찾을 수가 없다. 집은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독서실이 되었고, 자녀 입시를 위한 아내의 전략 요충지가 되었다. 우리에게 집은 다시 직장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가족은 꾸렸지만 자신은 완전히 가족의 일원은 아닌 것 같다. 어느 해 망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창 한 놈이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술에 취해 건들거리며 찍은 문자는 오자투성이였다. “아파트 화단에서 오늘도 오줌을 갈기며 생각한다. 부디 나를 용서하여 누가 여기에서 구출해주기를….”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한국 남자들이 목이 쉬도록 외쳐대는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들으며, 문득 우리에겐 ‘열심’(熱心)만 있고 마음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소년이 꼰대가 된 이유는 마음을 잃어버려서이지 않을까. 새해가 벌써 한 달도 더 지나버렸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좀 찾아보자. 우리가 내 마음도 그리고 소수자, 약자, 여성의 마음도 찾게 되면 꼰대가 어른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와 타인의 마음을 찾으려는 그 마음이 더 갸륵하지 않은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