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언제나 궁금했다. 조현민과 조현아는 어렸을 땐 어땠을까? 또 이명희는 어렸을 땐 어땠을까? “야 이 개×× 씨× 야 죽일 ×××야!”에서 알 수 있는 욕을 선택하는 섬세함과 그 조합의 수려함, “끄아아아아악~!”이라는 단전 밑바닥부터 끌어올리는 가공할 만한 샤우팅에서 느껴지는 수련의 깊이와 내공의 묵직함을 디폴트로 놓고, 나이를 역산해서 역추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건대, 30살 때 이명희는, 20살 때 조현아는, 10살 때 조현민은… 어후. 시뮬레이션 결과물이 너무 끔찍해서 그만두곤 했다. 거의 처키 아닌가. 말도 안 된다. 뇌세포에게 실례다. 시뮬레이션 종료. 그런데 그 시뮬레이션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무려 10살이다. 말도 안 된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던 시뮬레이션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이제까지 말이 된다고 여겨졌던 지식계에도 큰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바다. 일단 성악설·성선설 논쟁의 판도가 달라질 터다. 중학교 윤리 시간에 성악설 편, 성선설 편 나눠서 논쟁했던 때, 으레 성선설 편을 들던 나였는데, 후회한다. 성악설이 옳았다. 저 10살 소녀의 말과 문장 사이사이에서 우린 어떤 선도 찾을 수 없다. “아저씨가 죽으면 좋겠어.” 이 정도의 악마성은 메피스토도 울고 간다. 게다가 원래 선이 있었다 가정하더라도 악이 선을 물리치고 정신을 점령하기엔 10년이란 세월이 너무 짧다. 10살이란 나이가 너무도 어리다. 유물론과 변증법 쪽도 긴장해야 한다. 대학교 때 많이 들어본 그 유명한 “양질 전화의 법칙”, 양이 늘어나면 질적 변화가 유도된다는 그 법칙도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이명희, 조현민은 저 상태로 그대로 자라났을 것이다. 양만 늘어서. 그러나 공공선의 깨침, 상대에 대한 공감, 사회와 자아를 동시에 바라보는 넓은 시야, 이딴 질적 변화는 온데간데없다. 정말 팔다리만 길어지고 몸의 양만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긴장해야 할 것은 발달학, 유전학 쪽이다. 저게 악이고, 죄라고 한다면 저건 분명 유전된 것이다. 최소한 전이된 것이다. 자기한테 하는 소리 같던 “네 엄마, 아빠가 널 교육을 잘못 시켰다”라는 문장이 주요 증거다. 죄가 죄를 낳았다. 게다가 이자 불듯 심지어 불어난다. 아마도 이명희, 조현아, 조현민도 최초의 죄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죄가 전이된 사례들일 터다. 처키들이 대량생산되고 있다…. 조선일보 손녀는 죄인이 아닙니다. 죄가 낳은 죄입니다. 자기도 물려서 좀비가 된 좀비를 죄인이라고 지탄하지 않듯이. 외려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죄가 죄를 낳는 게 사실이라면, 그래서 30살 처키와 20살 처키와 10살 처키가 줄줄이 서서 죄를 토스하며 양질 전화 법칙은 개나 줘버리고 팔다리만 늘리며 각자 그대로 성장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최초의 죄인은 누구인가? 처키를 최초로 만든 이는 누구인가? 아마 그건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재벌이면 다 된다는 선민의식, 경영권을 소유하면 사람을 소유해도 된다는 귀족의식, 그 승계를 사회가 보장해준다는 특권의식 같은―부끄럽게도 우리들도 은연중에 합의함으로써 일조해왔던―어떤 의식의 체계일 터다. “야 이 개×× 씨× 야 죽일 ×××야!”를 한살짜리가 옹알이로 하는 사례가 발견되기 전까진, 이 가설이 제일 유력하다.
칼럼 |
[김곡의 똑똑똑] 조선일보 손녀는 죄인이 아닙니다 |
영화감독 언제나 궁금했다. 조현민과 조현아는 어렸을 땐 어땠을까? 또 이명희는 어렸을 땐 어땠을까? “야 이 개×× 씨× 야 죽일 ×××야!”에서 알 수 있는 욕을 선택하는 섬세함과 그 조합의 수려함, “끄아아아아악~!”이라는 단전 밑바닥부터 끌어올리는 가공할 만한 샤우팅에서 느껴지는 수련의 깊이와 내공의 묵직함을 디폴트로 놓고, 나이를 역산해서 역추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건대, 30살 때 이명희는, 20살 때 조현아는, 10살 때 조현민은… 어후. 시뮬레이션 결과물이 너무 끔찍해서 그만두곤 했다. 거의 처키 아닌가. 말도 안 된다. 뇌세포에게 실례다. 시뮬레이션 종료. 그런데 그 시뮬레이션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무려 10살이다. 말도 안 된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던 시뮬레이션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이제까지 말이 된다고 여겨졌던 지식계에도 큰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바다. 일단 성악설·성선설 논쟁의 판도가 달라질 터다. 중학교 윤리 시간에 성악설 편, 성선설 편 나눠서 논쟁했던 때, 으레 성선설 편을 들던 나였는데, 후회한다. 성악설이 옳았다. 저 10살 소녀의 말과 문장 사이사이에서 우린 어떤 선도 찾을 수 없다. “아저씨가 죽으면 좋겠어.” 이 정도의 악마성은 메피스토도 울고 간다. 게다가 원래 선이 있었다 가정하더라도 악이 선을 물리치고 정신을 점령하기엔 10년이란 세월이 너무 짧다. 10살이란 나이가 너무도 어리다. 유물론과 변증법 쪽도 긴장해야 한다. 대학교 때 많이 들어본 그 유명한 “양질 전화의 법칙”, 양이 늘어나면 질적 변화가 유도된다는 그 법칙도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이명희, 조현민은 저 상태로 그대로 자라났을 것이다. 양만 늘어서. 그러나 공공선의 깨침, 상대에 대한 공감, 사회와 자아를 동시에 바라보는 넓은 시야, 이딴 질적 변화는 온데간데없다. 정말 팔다리만 길어지고 몸의 양만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긴장해야 할 것은 발달학, 유전학 쪽이다. 저게 악이고, 죄라고 한다면 저건 분명 유전된 것이다. 최소한 전이된 것이다. 자기한테 하는 소리 같던 “네 엄마, 아빠가 널 교육을 잘못 시켰다”라는 문장이 주요 증거다. 죄가 죄를 낳았다. 게다가 이자 불듯 심지어 불어난다. 아마도 이명희, 조현아, 조현민도 최초의 죄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죄가 전이된 사례들일 터다. 처키들이 대량생산되고 있다…. 조선일보 손녀는 죄인이 아닙니다. 죄가 낳은 죄입니다. 자기도 물려서 좀비가 된 좀비를 죄인이라고 지탄하지 않듯이. 외려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죄가 죄를 낳는 게 사실이라면, 그래서 30살 처키와 20살 처키와 10살 처키가 줄줄이 서서 죄를 토스하며 양질 전화 법칙은 개나 줘버리고 팔다리만 늘리며 각자 그대로 성장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최초의 죄인은 누구인가? 처키를 최초로 만든 이는 누구인가? 아마 그건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재벌이면 다 된다는 선민의식, 경영권을 소유하면 사람을 소유해도 된다는 귀족의식, 그 승계를 사회가 보장해준다는 특권의식 같은―부끄럽게도 우리들도 은연중에 합의함으로써 일조해왔던―어떤 의식의 체계일 터다. “야 이 개×× 씨× 야 죽일 ×××야!”를 한살짜리가 옹알이로 하는 사례가 발견되기 전까진, 이 가설이 제일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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