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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3 18:13 수정 : 2019.11.04 09:43

김곡

영화감독

여러분, 조심하세요. 돈은 귀신입니다. 진심입니다. 물론 많은 반론이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돈은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하고 화나게도 우울하게도 합니다. 쥐구멍에 숨게도 하고 펄쩍펄쩍 날뛰게도 하고요. 다 합쳐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이죠? 네, 사람이 신들렸을 때 저럽니다. 사회학자들은 돈은 물신(物神)이라고 씁니다. 한국 속담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죠. 또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돈은 존재와 무 중간쯤에서 신출귀몰하는 유령인 겁니다.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나와 이 시대를 봤다면 다음처럼 썼을 겁니다. “전 지구에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돈이라는 유령이….”

돈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도 신들리게 하는바, 돈에 관한 모든 사회현상은 공포영화가 됩니다. 장르를 분류해볼 수도 있습니다. 일단 학자금과 대출은 스릴러입니다. 빚은 어딜 가도 쫓아와 달라붙는 스토커니까요. 카드 돌려막기로 역공을 펴면 빚은 슬래셔 무비로 돌변해서 당신의 수족을 잘라놓기도 하죠. 게다가 돈은 뭉치는 힘이 있습니다. 개별 화폐는 미약하나 쓰나미처럼 일파만파 불어납니다. 그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좀비물입니다. 무엇보다도 현대 임금제 자체가 뱀파이어물입니다. 일터에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피를 쪽쪽 빨아내려고 하니까요.

그러나 가장 흔히 접하는 장르는 역시 혼령물입니다. 돈은 사람을 탈바꿈시키는 아주 신묘한 빙의 능력이 있죠. 얼마 전 20년 만에 사촌형이 연락을 하더니, 아기 분유값이 없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길래 돈을 꾸어줬다가 떼였습니다. 알고 보니 노름빚이었더군요. 소싯적 함께 물놀이를 했던 그 순박한 사촌형이 저렇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귀신에 빙의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이보다 무서운 혼령물이 또 어디 있나요.

무속학자들은 탈혼(脫魂)과 빙혼(憑魂)을 구분합니다. 탈혼은 넋이 나가는 거고, 빙혼은 다른 넋이 들어오는 겁니다. 돈에 실성하면 탈혼이고, 돈독이 올라 사람이 변하면 빙혼이죠. 돈에 의해 연출되는 모든 역할극은 탈혼과 빙혼의 역할분배입니다. 갑을관계에선 으레 갑이 빙혼 역할을, 을이 탈혼 역할을 맡습니다. 같은 이치로. 돈을 떼먹는 쪽이 빙혼 역할을, 돈을 떼이는 쪽이 탈혼 역할을 맡게 되죠. 제 사촌형은 얼마나 빙혼되었길래 그렇게 얼굴을 싹 바꾼 걸까요? 조심합시다, 여러분. 저처럼 탈혼되지 않으려면.

사회학자 지멜은 <돈의 철학>이란 책에서 돈은 인간의 영혼마저 사적 소유물로 만든다고 암시했죠. 심오한 통찰입니다. 정말 돈은 사람의 영혼을 떼었다 붙였다 합니다. 이 얼굴 저 얼굴 벗겼다 씌웠다, 인간을 무당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쯤 되면 아,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공포영화구나, 자본주의가 이미 <월하의 공동묘지>구나, “새들도 자본 자본 하며 울 날이 오리라”던 최승자 시인의 읊조림은 한낱 비유가 아니었구나, 하실 겝니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공포영화가 비극적인 건 아니니까요. 귀신의 한을 풀고 삶을 되찾는 경우도 있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귀신과 공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상 우린 돈을 쓰지 않을 수 없고, 혼이 들락날락하는 무병의 운명도 불가피합니다. 기왕 그렇다면 좋은 무당이 됩시다. 잡귀나 악귀는 물리치고, 부득이한 접신 때에도 지나친 탈혼과 빙혼은 삼가며, 이성의 통제권만은 놓치지 않는 좋은 무당이.

첨언. 좋은 무당은 원혼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돈에는 이 모든 공포영화에서 희생자 역할을 맡았던 이들의 비명과 유언들이 담겨 있습니다. 무당 여러분, 잊지 마세요. 우리가 돈을 쓸 땐, 항상 누군가의 피와 목숨을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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