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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30 20:24 수정 : 2016.07.15 15:50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바다 사이 등대
엠(M) 엘(L) 스테드먼 지음, 홍한별 옮김/문학동네 펴냄(2015년)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동요 <등대지기>의 첫 구절은 스테드먼의 <바다 사이 등대>의 배경인 야누스 록을 정확히 그려낸다.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 100마일 떨어진 작은 바위섬, 거기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양탄자처럼 펼쳐진” 바다밖에 없는 이 섬을 다른 지역과 묶어주는 고리는 오로지 일년에 네번, 생필품을 실어다 주는 배뿐. 1918년 12월, 이 외딴 바위섬의 등대원 자리에 톰 셔본이라는 남자가 지원한다.

톰이 야누스 록으로 떠난 동기는 전쟁이 준 죽음의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였지만, 그는 생기 넘치는 아가씨 이저벨을 만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안식처를 찾는 꿈을 꾼다. 아직 떨치지 못한 죄책감과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삶의 실망이 낮게 깔렸기는 해도 두 사람은 안온한 행복을 찾아간다. 이저벨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고 톰이 등명기를 점검하는 대목의 선명한 묘사는 고요한 아름다움까지 띤다.

미국 아마존의 장르 구분으로는 이 소설은 ‘심리 스릴러’에 속한다. 의외의 분류지만, 진정한 사건이 한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그로 인해 톰과 이저벨의 삶이 한층 복잡한 빛깔을 띤다는 면에서는 수긍이 가기도 한다. 1926년, 이른 아침의 바람에 떠밀려온 배 한척,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이저벨과 톰은 운명적인 선택을 하고, 그 이후에 그들은 비로소 꿈꾸던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환한 빛은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우듯 두사람의 삶에도 잠 못 이룰 괴로움이 따라온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역시 톰 셔본이라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마이클 파스벤더가 연기하게 될 톰에겐 여러 얼굴이 있다. 어머니에게 버림 받았다고 믿었으며, 아버지와는 화해하지 못했던 청년. 자기 옆에서 죽어간 사람들, 자기가 죽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는 전직 군인. 먼바다로 빛을 비추는 일을 성실하게 해온 등대원. 그리고 좌절에 빠진 아내를 끝까지 지키는 애정 깊은 남편 그리고 아버지, 그러나 끝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양심의 소유자. 톰은 아내를 위해 자신의 원칙을 한번 어기지만, 슬픔에 빠진 다른 여자를 위해 또다시 아픈 선택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책임을 진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바다를 건너는 바람이 매섭고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면, 등대 위의 불빛조차 우리를 구할 수 없을 듯 연약하다. 전쟁, 몇번이고 좌절된 소망, 나와 다른 이에 대한 배척이 세계에 어둠을 내린다. 하지만 칠흑같이 어두워 갈 길을 모르는 밤에도 등명기의 불을 켜는 사람이 있다. 슬프고 아름답다는 흔한 단어 이외에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바다 사이 등대>는 가장 고독한 속에서도 깊은 사랑을 키운 사람의 빛을 보여준다. 인생은 우리에게 아주 잠깐만 단맛을 주지만 그래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시작이 그랬듯이 <등대지기>의 마지막 구절 또한 이 소설에 무척 어울린다.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빛을 비추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없을 리가 없다.

<바다 사이 등대>는 고독을 감수하며 빛을 지켜온 모든 등대원의 삶이 톰 셔본만큼이나 충만하기를 바라게 되는 소설이었다. 통계청 기록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광파표지 시설 중 유인등대는 모두 37기라고 한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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