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미스테리아엘릭시르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펴냄(2015) 모든 시작에는 설렘과 우려가 따른다. 뜻한 대로 이룰 거라는 희망과 과거의 실패에 바탕을 둔 비관. 한국에서 장르문학으로 하는 모든 시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쌓인 독자층에 대한 낙관적 예측도 있지만 장르문학이라는 이름 자체에 스며 있는 특수성의 한계에 대한 불안도 크다. 이 양가의 감정이 추리소설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의 출범 밑에 깔렸다. 창간호가 온라인 서점의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호조를 보이지만, 독자 리뷰를 살펴보면 이 잡지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시작부터 끝을 예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나, 한국의 장르문학 팬들은 장르잡지 <판타스틱>의 폐간이나 여타 비슷한 시도가 무산된 경험을 통해서 각오하는 법을 배웠다. 그간에도 환상소설과 과학소설(SF) 등을 다루는 웹진들이 독자적 방식으로 활동해 왔고 한국 추리소설 창작과 발굴의 밑거름이 된 <계간 미스터리>도 있지만, <미스테리아>는 더 넓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다. 창간호를 훑어보면 기획 기사 중에서는 일본 신본격의 대표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가 나누는 대담 ‘밀실입문’과 디자인 전문가 박해천의 소설 속 공간 분석 ‘집안의 괴물들’,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전하는 실화 기록 ‘검은 집, 엄마의 비밀’이 눈에 띄고, 데니스 르헤인과 미쓰다 신조의 서면 인터뷰와 추리소설 편집자들의 대담 등이 정통 추리문학 전문 잡지에 대한 욕구를 보살핀다. <미스테리아>의 핵심은 역시 소설로, 미국 작가 로런스 블록의 단편 외에도 한국의 대표 작가 단편 네 편이 수록되었다. 이 한국 단편 네 편이 <미스테리아>의 지향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배명훈의 ‘배신하는 별’은 현실과 다른 시공간을 창조하는 과학소설의 틀 위에 조직 내의 배신자를 찾아내는 첩보물의 내용을 얹었다. 건축물의 배치를 은하수와 오리온 별자리에 겹쳐서 인물의 시야와 동선을 파악하는 과정이 수사의 핵심인 이 단편은 평면의 텍스트를 다차원으로 조립해 세우는 힘이 있지만, 독자에게는 평균 이상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일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공범 관계의 분열에서 오는 공포를 그린 송시우의 ‘누구의 돌’은 극적인 사건 진행으로 긴박감을 자아낸다. 도진기의 ‘구석의 노인’은 제목 그대로 오르치 남작 부인의 패러디로 의외성은 없으나 고전 추리소설을 한국적으로 변용해내는 작가의 특장이 두드러진다. 김서진의 ‘신드롬’은 전염병이라는 시의적 소재를 다소 환상적 기법으로 구현하여 획일화되는 현대인의 삶에 주목하는 사회적 소설이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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