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밤의 팽창구보 미스미 지음, 권남희 옮김/레드박스 펴냄(2015) 내가 속해 있지 않은 다른 성은 어느 정도는 미지의 존재인 것이 불가피하지만, 가끔 남성들의 악의 없는 놀라움에 내가 외려 놀랄 때가 있다. 가령, “어, 여자들도 야한 소설을 읽어요?” 같은 말들. 물론 ‘야하다’, ‘에로틱하다’는 개념이 성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는 있지만, 화성에서 감자를 길러 먹는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도 여성이 성적 묘사의 수위가 높은 소설을 읽는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분위기는 싸그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는 여성이 욕망을 말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금지하는 성차별주의자들 탓만은 아니고, 천진한 질문을 예사롭게 던지는 ‘보통 사람들’ 탓도 있을 것이다. 구보 미스미의 <밤의 팽창>의 여주인공 미히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롭다. 보육교사인 미히로는 다정한 남자친구 게이스케와 같이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느덧 습관이 되었을 뿐 정열은 사라지고 없다. 미히로의 욕망은 달이 차고 이울듯 이십팔 일의 주기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하지만 게이스케는 그를 돌아봐 주지 않는다. 하지만 미히로의 사춘기 시절,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가 돌아온 엄마처럼 “음란한 여자”라는 딱지가 붙을까 두려운 미히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밀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흔들리는 미히로에게 게이스케의 동생 유타가 어느덧 다가선다. 1965년 생인 구보 미스미는 2009년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아르(R)-18 문학상’이라는 성인 여성 대상의 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작인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포레)나 후속작인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포레)을 포함, <밤의 팽창>에 이르기까지 밀도 높은 성적 묘사와 더불어 일상의 고통을 견디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있는 소설들로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 모든 작품을 꿰뚫는 공통점이라면 여주인공이 느끼는 성적 욕망과 모성은 등을 맞대고 있다는 면이다. 여성의 욕망을 양극화하여 한쪽 극단에는 욕망에만 휘둘리는 창녀, 다른 극단에는 모성으로 넘치는 성모를 놓는 이분법적 관점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시각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불임,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우울증, 부모의 편협한 애정과 혹은 무관심으로 고통받는다. 구보 미스미의 소설에서는 모성과 성욕이 양립할 수 없는 다른 여성상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두가 여성의 문제이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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