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지음/민음사 펴냄(2015) 학교는 모든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역설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사랑과 정성의 “에로에로 에너지”가 가득하고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이 주는 애정의 어린 형태를 만날 수 있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억압이라는 괴물을 처음으로 맞대면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학교에 대한 양가의 감정은 거의 모두에게 있고, 대부분 그 폭풍 같은 시절을 별일 없이 보냈다는 데 안도하면서도 그때는 즐거웠다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학교에서 멀쩡히 살아나올 수 있었던 건 우리에게 해로운 존재들을 남몰래 퇴치해준 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가령, 보건실 선생님이라든가. <보건교사 안은영>은 퇴마사 보건교사의 사소한 모험과 그만큼 사소한 연애의 이야기를 그린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이 두 가지 범주에 포함되는 것처럼.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은영은 간호사로 일하다 죽음이 가득한 병원이 괴로워서 그나마 사랑이 넘치는 학교로 들어왔다. 학교는 온갖 나쁜 기운을 봉인한 장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상태지만 그래도 바깥세상보다는 안전하다. 학교 창립자의 손자이자 한문 선생인 인표는 어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불편할망정 남다른 보호의 에너지에 둘러싸여 있기에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닐 수 있다. 은영은 주기적으로 그의 손을 잡아서 기운을 충전하며 학교에 찾아드는 온갖 불운과 요기를 퇴치한다. 비비탄 총과 무지개색 늘어나는 깔때기형 장난감 칼로. 총 10편의 단편 수록, 270페이지가량 분량의 이 소설집은 전체 사건의 구조는 가늘지만, 등장인물의 개성이 뚜렷해서 힘이 있다. 은영과 동종 업계 종사자인 원어민 교사 메켄지, 남에게 붙은 옴을 잡아먹어 주는 전학생 백혜민, 오리 교사 한아름, <레베카>의 드윈터 경 같은 조슈아 장과 그 부인, 왜곡된 역사 교과서 채택에 반대하지만 본성이 온후해서 갈등이 괴로운 역사 교사 박대흥 등, 조연들까지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들의 불운을 몰아내고 행운을 지켜주는 일을 업으로 삼다가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안은영은 염색으로 거칠어진 머릿결과 붕 뜬 화장과 상관없이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다. 재단의 낙하산이라는 위치 때문에 인표는 밉상이 될 법도 하지만 자기가 베풀 수 있는 친절에 연연하는 배려가 있어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이 책에 나오는 학교는 지금 2015년의 학교라기보다는 어느 시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보편적 모습의 학교에 가깝다. 그러기에 소설은 오히려 당대성을 성취한다. 다 다른 시기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학교의 모습이 이 소설집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모르는 새 슬금슬금 다가오는 요상한 기운은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겪는 모든 문제의 은유이고, 그에 삼켜지지 않도록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쫓아주는 은영은 무사한 삶에 대한 바람이 형상화된 인간이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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