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모리 아키마로 지음, 김아영 옮김/황금가지 펴냄(2016) 봄은 독서의 계절이다. 생경하지만 이렇게 말해본다. 사시사철 어느 계절이라고 특별히 책을 더 많이 읽지 않는 현재에는 오히려 언제라도 독서에 좋은 계절인 것이다. 서점 매대에는 봄에 필사적으로 발맞추려는 듯 화사한 표지와 제목, 무거운 겨울옷을 벗은 듯 가벼운 내용의 소설들이 다른 계절에 비해 좀더 많이 깔렸다. 책 한 권 들고 공원 벤치에 누워 읽기 좋은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끈 소설은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였다. “전격 만취 미스터리”를 표방한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든 건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인 사카즈키 조코가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같은 주에 출간된 기타무라 가오루의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작가정신)의 주인공인 출판사 직원 고사카이 미야코가 술에 취하면 힘이 세지고 기억이 끊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술친구를 삼으려면 아무래도 술이 센 쪽이 낫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소설도 술친구를 고를 때와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해 본다.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는 전직 아역배우인 조코가 대학에 입학한 직후, 추리소설 동호회인 ‘추리 연구회’에 가입하려다가 잘못해서 술 동아리인 ‘취리 연구회’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모험담을 그렸다. 조코는 어쩌다가 바다 밑바닥 같은 눈을 한 선배 미키지마에게 끌려가, 술로 캠퍼스 생활을 보낸다.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술자리에 밤을 지새우고, 낮에는 들떠 학교를 헤매다, 꽃에, 공에, 해변에, 달에, 눈에 취하는 이치를 배운다. 이 책에 실린 다섯 개의 단편은 모두 술 및 연애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품었다. 술에 취해 벚나무 아래 잠든 미녀는 어떻게 되었나? 기차 안에서 만난 운명의 연인이 큰 행사인 야구 경기 결승전을 질색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해변에서 엇갈리는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나? 어째서 학교 축제 집행부실에서 150㎏ 분량의 광고지가 사라졌나? 그리고 눈 내리는 밤 온천에 나타나 두 연인을 갈라놓은 묘령의 미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다. <이름 없는 나비는 아직 취하지 않아>는 어린 시절 티브이(TV)에서 보았던 청춘 드라마처럼 대학 생활의 낭만을 과장해서 집약해놓은 소설이다. 즉,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있었던 듯한 착각을 주지만, 아무도 이렇게 누리지는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의 등급을 스스로 매기고 학점 관리와 조별 과제에 허덕이고 끝없이 아르바이트해서 등록금 때문에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오늘의 대학생들에게는 쉽게 권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술, 연애,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아리. 이 청춘 연애 추리 소설은 중간고사 하나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듯 매달려야 하는 한국의 대학생에게는 차라리 판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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