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봄날의 바다
김재희 지음/다산책방(2016)
몇 년 전 제주도에 혼자 간 적이 있다. 공항을 나서려는데, 1인 여행자에게는 ‘제주 여행 지킴이 단말기’를 대여해준다는 안내판이 유난하게 눈에 들어왔다. 올레길을 걷던 여성이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던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 단말기를 휴대하면 경찰이 여행자의 경로를 쉽게 추적할 수 있고 위급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홀로 될 자유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해도 안전하려면 줄곧 남이 나를 지켜보게 해야 한다. 특히 여성이라면 실감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다.
<봄날의 바다>는 외부인을 매혹하는 섬이자 모두에게 낯선 땅인 현재의 제주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6월의 어느 날, 희영은 살인 용의자로 죽은 동생의 결백을 밝혀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에 품고, 10년 전 떠났던 제주로 돌아온다. 목적지는 물 맑은 한담 해변의 바다 게스트하우스. ‘체’라는 별명이 붙은 주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자신의 입으로 밝힌 신분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함께하는 이 공간 속에서 희영은 10년 전 새별 오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려 한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같은 곳에서 그날의 일과 유사한 사건이 또 벌어졌다. 인터넷에서 익명의 제보자가 말한 대로 두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까?
김재희는 <훈민정음 암살사건>과 <경성 탐정 이상>처럼 역사적 사건을 다룬 팩션형 추리소설로 인정받은 작가로, 현대 소설에서도 시대적 기록이나 세태의 관찰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준다. 2014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섬, 짓하다>에서는 성형 여성을 비방하는 인터넷상의 혐오 범죄와 씻김굿이라는 오컬트적 요소를 결합했다. <봄날의 바다>에서는 현재 제주가 겪는 변화라는 시대상과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으로서 살아가는 고통,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을 흥밋거리로만 사용하는 미디어의 속성을 다루었다. 사건은 빠르고 익숙하게 진행되며, 등장하는 인물은 개별화되어 있다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대표자처럼 보인다. 게스트하우스의 손님들은 개성보다는 “영화 좋아하는 요새 젊은이”라는 피상적 특징이 강조되어 있고, 범죄심리분석관 감건호는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고 오류는 가볍게 넘어가 버리는 티브이(TV)형 지식인다운 인물이다. 희영 어머니 김순자는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행동한다는 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나오는 어머니를 닮았다.
범죄소설의 근원이 동시대의 스케치와 구조적 분석이었다는 것을 긍정하면, 이 소설이 보여주는 현대 한국 사회의 전형성은 기록의 가치가 있다. 특히 김재희의 현대 소설에서는 범인과 일상적 관계가 전혀 없었던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종종 보인다. <봄날의 바다>에서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며, 그들은 범인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 이는 전체적으로는 작가가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을 의도적으로 심으려 했다기보다는 꼼꼼한 세태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지켰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물로 보인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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