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셸리 킹 지음, 이경아 옮김/열린책들(2016) 며칠 전 <가디언>에서 책에 대한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짝을 만나는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읽었다. 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회사의 조사를 보면, 연결된 커플의 경우 프로필에 태그로 써놓은 영화나 음악,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15% 정도의 유사성을 보였지만, 책은 21%의 유사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비슷한 독서 취향은 고사하고 책 읽는 사람도 찾기 어려워진 스마트폰 시대에 미심쩍은 결과지만, 책은 연인들의 다리라는 낭만적인 믿음은 살아 있다는 증거 같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책을 통해 모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를 그린 소설이다. 이미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와 A. S. 바이어트의 <소유> 등, 책과 글로 연결되어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과 그를 발견하는 독자의 이야기는 소설의 역사에서 낯설지 않다. 다만 이 작품은 종이책의 비중이 점차 낮아지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책의 의미와 공동체의 소통 공간으로서 책방의 역할을 모색하는 데 중점이 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 기업인 아르고넷에서 일하던 매기는 불황으로 서른넷의 나이에 정리해고를 당한다. 시간만이 재산으로 남은 상황, 매기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속 느리게 살아도 되는 장소인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실망의 나날들을 견뎌낸다. 매기에게 다시 일어설 활력을 준 것은 낡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 속에 끼워져 있는 두 남녀의 메모다. 역사상 가장 논쟁적이었던 연애 소설 속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정을 키우는 헨리와 캐서린의 사연에 매료된 매기는 이 발견을 기회 삼아 드래건플라이와 자신의 삶을 다시 살려내기로 한다. 독서가의 이상이 집약된 이 작품은 향수를 동력으로 삼는다. 어렸을 때 밤새워 몇 권이고 읽었던 로맨스, 에스에프(SF)와 판타지들의 추억이 책장 사이로 밀려오고, 남과 다른 삶의 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실패를 자책하지 않고 한데 모여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이 책 안에 펼쳐진다. 지나간 시대의 대표 상징이 되어버린 책과 서점을 지키고 싶다는 바람은 그 기억과 꿈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가장 충실한 독자들이라도 종이책과 작은 서점에 대한 낭만이 퇴행과 백일몽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에도 지속할 현실로 전환되려면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현재 한국에서도 자신만의 특색을 가진 작은 서점들이 군데군데 생겨나 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을 모아주고 있다. 온라인 서점의 확장,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다양한 미디어와 경쟁하면서 이 작은 공간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한때 세상에 널리 퍼졌으나 지금은 멸종되어가는 거대한 생명체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기의 말처럼 “서점은 로맨틱한 생명체이다”. 그들이 세계에서 완전히 물러가는 날까지는 책과 우리의 로맨스는 애틋하게 계속된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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