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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8 20:05 수정 : 2018.10.18 20:40

[책과 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왼쪽주머니(2018)

어렸을 때는 자라서 난 무엇이 될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도 이 고민은 똑같다. 다만 그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늙어서 난 어떻게 될까. 100살 장수의 시대, 그러나 고독사와 빈곤 노인에 대한 기사가 넘쳐나는 시대. 나는 괜찮을 거라고,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은 언뜻 보기엔 거부감이 든다. 모든 국민은 70살이 되는 날, 안락사를 맞는다. 이런 법안이 가결되어 2년 뒤에 실행된다는 설정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굳이 말하자면 사회 풍자소설이라 하겠다. 현재 노령 사회로 접어드는 일본의 현실을 진단하지만, 모든 현대 국가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55살의 도요코는 벌써 10년 넘게 자리보전만 하는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들고 있다. 아들인 마사키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거대 은행에 취직했지만 인간관계를 견딜 수 없어 그만둔 후 3년째 구직활동을 핑계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고, 그를 보살피는 일도 다 엄마인 도요코의 몫이다. 남편은 가사는 돕지 않고 자기계발을 핑계로 세계여행을 계획 중이며, 큰딸은 집에서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도요코에게 70살 사망법안은 한 줄기 빛과 같다. 자신의 삶도 15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앞으로 2년이 있으면 시어머니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도요코가 냉혹하게 느껴지는가? 70살 사망법안을 찬성하는 사람은 노인 부양의 의무를 진 사람들만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품위 있게 마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물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누릴 권리를 지키고자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부분은 가정 내의 노동 착취에 대한 선명한 묘사이다. 가정은 여러 구성원이 같이 사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필요한 노동은 주로 여성, 어머니를 착취하여 이루어진다. 도요코의 가족은 그녀가 노동에서 탈출했을 때야 비로소 그 과중함을 깨닫는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해야 했을 일을 한 사람에게 전가하고 있다. 그리고 도요코를 해방하는 일이 결국은 모두가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현대식 고려장과 같은 극단적인 제안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지만, 단지 감정적 동요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수명이 늘어난 사회에서 그를 뒷받침할 제도가 무너졌을 때 개인의 기본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묘사하며, 이를 해결해나갈 방안을 제시한다. 물론 그 해결책은 순진하게 여겨지는 구석이 있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 증세, 개인들의 가사 노동 분담 등 서로 자신의 몫을 선선히 나눌 때만 실천할 방안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암담한 세계에서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공존할 수가 없다.

결국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불쾌하게 들릴 수 있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필요 없는 구성원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 없는 구성원은 없다는 원론적 얘기도 아니다. 모두가 살아야 할 필요를 지켜주는 것이 사회의 의무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늙고 병들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간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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