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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16 06:02 수정 : 2018.11.16 20:07

[책과 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지음, 공보경 옮김/한스미디어(2018)

‘만약’은 후회하는 이들의 과거를 향한 부사이다. 만약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만약 그때 저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해야 했지만 못 했던 일들과 하지 않았어야 했지만 저질러 버린 일들이 정신을 좀먹는다.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후에 그것을 덮기 위해 더 큰 범죄를 저지른 여자의 심리를 그린 스릴러이다. 오리건주 벤드시,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동네. 리즈는 아홉 살 때 이웃인 댄 밀러의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갇혀 죽을 뻔했다. 댄 밀러는 리즈와 그녀의 오빠 지미는 구했지만, 자신의 아들 세스는 구하지 못했다. 아들을 잃은 댄에게 동네는 오히려 냉담하게 대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르고, 리즈는 이제 그곳에서 유망한 젊은 사업가인 남편 오웬과 함께 산다. 그 옆집에는 부유한 부부 캐롤과 데이비드, 그들의 세 살 된 아이 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별안간 깨어지고 만다. 리즈가 변호사 시험을 보러 가던 아침, 운전을 서두르다가 옆집 아이 찰리를 치어버린 그 순간부터.

실수는 반갑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손님이다. 하지만 그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다른 실수를 저지르면 그때부터 범죄가 된다. 그리고 수많은 추리소설이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한다. 리즈가 자기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때 바로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만약 이렇게만 했더라면 이 소설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 후에도 수난과 회개가 있었겠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즈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믿었던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고, 죄책감은 물이 불어나듯 리즈를 삼켜버린다. 비극이 일어나면 언제나 그러하듯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가장 약하고 악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는 읽어가는 게 꽤 괴롭지만, 쉽게 놓아버릴 수는 없는 책이다. 하나의 잘못은 차츰 눈덩이처럼 커져서 파국으로 빠르게 치닫는다. 아이를 찾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절절하지만, 대중은 타인의 고통을 늘 구경거리로 소비한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인물도 등장한다. 리즈의 남편 오웬이 그런 사람이다. 큰 투자 유치 건을 앞둔 그는 아내의 잘못이 자기 발목을 잡을 것만 걱정한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그래도 인간에 대한 최소의 신뢰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성의 심연을 연구하기 위해 바닥까지 파고드는 게 추리소설이지만, 요새의 스릴러들은 센세이션을 위해 잔혹한 사건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적어도 독자에게 비극을 오락으로 소비한다는 죄책감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인간은 모두 약하지만 돌이킬 수 없지는 않다고 한다.

결말에 이르러, 이 소설은 다시 한번 만약을 묻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래를 향해 있다. 만약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면? 만약 고백한다면? 리즈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에는 수없는 후회가 있었지만, 만약 우리가 늦게라도 자기 실수를 갚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의미에서 만약은 속죄를 준비하는 사람을 위한 단어이기도 할 것이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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