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2019) 추리소설은 잔혹한 범죄를 오락화한다는 면에서 비윤리적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으로 죄와 벌의 성립 조건을 탐구한다는 면에서 윤리적 태도 없이는 발생할 수 없는 장르이다. 현재의 세계와 유사하지만 기술적으로 다른 조건 하에서 구축되는 에스에프(SF)의 공간에서는 이 죄와 벌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발생한다. 무르 래퍼티의 <식스웨이크>는 에스에프와 미스터리의 팬들을 다 초대하여 철학적 숙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소설이다. <식스웨이크>는 각각의 장르에서 가장 전통적인 소재를 가지고 왔다. 추리소설 쪽에서는 밀실 미스터리이고, 에스에프 쪽에서는 클론 기술과 우주여행이다. 먼 미래, 냉동 수면에 빠진 승객들을 싣고 아르테미스 행성까지 가는 우주선 도르미레 호에서 요리 준비 및 운행 잡무 담당 선원 마리아 아레나가 깨어난다. 그가 발견한 것은 자기를 포함, 다른 선원들의 죽은 시체이다. 하지만 그들은 죽었으면서 죽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클론이며, 마인드맵이라는 기억이 이식된 새로운 클론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이건 클론 선원들이 신체를 바꿔가며 400년 동안 항해를 하는 우주선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이다. 클론들을 죽이고 우주선의 장치를 파손한 범인은 바로 그들 중에 있다. 도르미레 호에 승선한 선원들은 모두 과거의 범죄자이고 살인을 할 동기가 있다. 재생할 신체가 사라진 클론들은 생존을 위해 모두를 의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자기 의지를 획득한 인공지능 이안의 지도에 따라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식스웨이크> 세계 속에는 명확한 규칙이 있다. 한 개인에게는 클론이 오직 하나만 존재해야 하고, 둘 이상 존재할 경우 먼저 복제된 것을 제거한다. 각 클론은 고유의 마인드맵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식을 가질 수 없다. 클론의 마인드맵이나 디엔에이(DNA)는 누군가가 조작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모든 규칙은 지켜지는 한도 내에서 깨어진다는 역설이 있지 않은가? <식스웨이크> 또한 이 규칙이 어긋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 책을 추리소설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탐정이 되어 자신을 죽인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심지어 자기가 범인일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죽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클론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본체의 의식을 내려받는다. 이는 영생의 에스에프적인 표현일까? 기억이 남아 있다면, 껍데기일 뿐인 클론을 죽이는 것은 살인일까? 의식과 신체를 분리할 수 있는 세계에서 인간의 삶은 무슨 의미인가? 인류는 이렇게 신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을까? 엄격하게 보면 <식스웨이크>의 여섯 선원은 자기만의 벽장 속에 감춰둔 해골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느라 전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못한다. 많은 단서가 마리아를 포함한 선원들의 회상 속에서 그저 제시된다. 수수께끼 풀이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작은 약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이제 웬만한 트릭을 다 써버린 듯한 추리소설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에스에프라는 장르가 전통적으로 탐구했던 철학적 문제들을 충실히 논의하는 작품이라는 큰 장점이 있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매혹적이지만, 해답은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한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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