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13 18:51
수정 : 2017.04.13 19:04
책거리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광장의 시기에 한국인들 상당수가 스스로 ‘약자, 주변인, 외부자, 타자’임을 확인하거나 적어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비상정국’은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인 ‘내부자’와 그렇지 않은 ‘외부자’를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죠. (<말과 활> 2017 봄호, 권두비평)
‘촛불 광장’이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을 불러왔지만 사람들의 분노와 우울함이 새 시대를 향한 희망과 환희로 곧장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선가요. 서점가에서는 ‘힐링 책’들이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며칠 전 서점에서 비닐 포장에 싸인 예쁜 책 몇 권을 사 들고 와 읽어 보았지만 왠지 몰입이 안 되더군요. 책이 점점 공공적인 가치를 잃고 팬시 상품처럼 변해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도 들었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어렵고 복잡해서 ‘팔리지 않는 책’은 갈수록 나오기 힘들겠구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때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커녕 출판이 ‘내부자’의 손아귀에 놀아난 꼴이 되면서 책 생태계가 다양성을 회복할 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5월 21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 이혁진은 당선작 <누운 배>에서 ‘회사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누운 배’는 회사이자 나라이자 광장에서 자신이 ‘주변인, 외부자, 타자’임을 인식하게 된 서민들, 시민 각자가 아닐까요.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고,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누운 배’는 아직 그 무거운 몸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모레입니다만 아직은 탈상도, 힐링도 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가만있지 않는’ 실천과 정치의 재구성이 계속되겠지요. ‘세월호’를 읽고 쓰고 말하는 일도 그런 치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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