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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25 19:08 수정 : 2017.10.25 19:45

황민호
<옥천신문> 제작국장

학교가 생기면서 교육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온 삶의 서로 마주하는 대화가, 서로의 경험을 자연스레 풀어놓는 것이 바로 ‘교육’인데, 국가에 의해 정형화되고 획일화되어 불행히도 ‘장소성’을 잃어버린 교육이 탄생하고 말았다.

여기서 ‘장소성’이란 말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터무니’없는 일이 이토록 많이 발생하고 ‘터무니없다’라는 말이 횡행하는 것은 실제로 터의 무늬가 사라졌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터의 무늬’란 말 그대로 생활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이어져 내려온 여러 삶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삶의 흔적을 뜻한다. 그런데 실제로 교육과정에서 이것이 누락되고 부분으로 취급되고 있다. 시공간에 사는 존재인 사람에게 살 부대끼고 얼굴 마주하는 공통의 시공간의 누락은 심각한 자존감의 손상과 아울러 존재를 부정하게 만든다. 국가의 중심지인 서울,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 그곳에서 우월한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것이 표준이고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변방의 지역 농촌은 ‘탈출’해야 하는 곳이거나 ‘딛고 일어서야 하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장소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과 장소성을 반영하지 않는 교육은 살고 있는 시공간과 배움의 시공간이 심각하게 이격되며 일그러진 ‘선망’과 왜곡된 ‘부정’을 낳는다.

실례로 여전히 옥천고는 서울대 몇 명 보내느냐로 평가받고 있고, 옥천상고(현 충북산업과학고)는 삼성과 엘지(LG) 등 대기업 생산직과 제1금융권에 몇 명 취업시켰느냐가 중요한 잣대로 평가된다. 일부 교사들의 ‘너 공부 못해서 농사나 지을래’라는 말과 ‘너 그러다가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해’라는 말 속에는 특정 지역과 직업군에 대한 멸시가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지역에 사는 주민, 학부모, 교사 모두 서울과 도시의 식민지인으로 현실을 인정하고 다양한 양태로 표출하면서 학생들은 이를 쉽게 내화한다. 또한 미디어에서도 이를 여러 양태로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쉽게 체화된다.

‘촌놈’, ‘촌티’, ‘촌스러운’ 따위 말의 의미가 보여주듯이 세련되지 못하고 무언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 지역 출신이라는 것은 어느새 부끄러움의 몫이며, ‘어디’라고 해서 알지 못하면 어느새 옆 큰 도시를 출신지로 말하게 된다. 가령 어떤 이는 고향을 물어보니 옥천임에도 불구하고 대전이라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옥천’을 잘 모르고 한참 설명해야 하니 그런 물음 자체가 귀찮아서 그리 말해버리는 것이다.

이제 지역사회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 다가왔다.

바로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터무니’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사색의 여정에서 지역학을 떠올리게 된다. 옥천으로 말하면 옥천학을 생각한다. 생활권, 생활터전에 기반한 학문을 말하는 것이다.

단지 논문을 쓰고 학위를 따는 데 쓰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장삼이사에게 도움이 되는, 갑을병정 구분 없이 모두에게 실생활에 보편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가능케 하는 학문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생활권이 가능한 장소성이다. 농촌지역에서는 읍·면 단위를 생활권으로 꼽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내버스의 읍 집중으로 오일장이 와해되면서 읍·면 생활권 단위가 무너지는 형국이다. 그래도 아주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면 지역마다 형성된 또 다른 정서가 있다. 이는 오랜 시간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진 지역 공동체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옥천학의 기반은 각 면 지역의 학문이 기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안남학, 청산학, 청성학, 군서학, 군북학 등 각 면 지역 이름을 붙인 학문이 있어야 하겠고, 분류학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보건, 복지, 교육을 다 아우르는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학교 안팎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온 삶이 교육이어야 하고 온 생활터전이 교육이어야 한다. 터무니 있는 교육을 생각한다. 지역학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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