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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5 18:16 수정 : 2018.03.05 19:12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

2008년 <옥천신문>은 ‘희망옥천 만들기 주민 정책제안’을 시리즈로 내보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 즈음이다. 읍내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이미연씨는 이런 제안을 한다. “공기만 맑으면 뭐 해요? 옥천이라는 사회가 젊은이들을 다 쫓아내는걸요. 번듯한 도서관도 없지요. 아이들과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길 해요? 영화관이나 수영장이 있나요? 미술관이나 박물관, 공연장이 있나요? 그러니 젊은이들이 머물 공간이 없는 거지요. 이 옥천이라는 곳은 자꾸 아이들을 대전으로 도시로 가라고 말하고 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 하나뿐인 볼링장이 사라질까 하는 노심초사가 기사가 되고, 아이들이 뛰어놀 바닥분수가 생긴 것이 큰 뉴스가 된다. 그나마 수영장이 만들어진 것은 주민대책위까지 결성되고 2003년부터 5년에 걸쳐 지방선거에 주민 공약으로 내걸어서다. 징했다. 도서관도 허름한 교육청 도서관 하나뿐이었다. 평생학습원이란 이름으로 도서관 하나 생길 때도 엄청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옥천신문>에서 수차례 이웃 지방자치단체 사례를 취재해 보도한 끝에 ‘영화관’을 짓게 됐다.

수영장이 생길 때는 별의별 논란이 다 많았다. 사람이 없는데 누가 이용할 거냐? 거리 가까운 대전에 있는 수영장 이용하면 되지 예산 낭비다. 조그만 동네 다 아는 사람인데 수영복 입고 만나면 서로 거시기 하지 않겠냐? 미풍양속을 흐린다느니 하는 고릿적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됐다. 논란 끝에 만들어진 수영장은 사람이 미어졌다. 해마다 최고 이용객 수를 경신하며 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하나 더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 이젠 여름철 야외 물놀이장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슈가 매년 나오고 있다.

이미연씨가 말한 제안 중 아직 없는 것도 수두룩 빽빽하다. 미술관도 박물관도 소극장도 없다. 제대로 된 광장이 없어 시위나 집회 시에 말하기도 민망한 농협 군지부 주차장을 빌려 쓰고 있다. 박물관이 없어 옥천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박물관이 있는 청주로 옮겨간다. 지역에서 발견된 문화재마저 빼앗기는 것이다. 영화관 짓자는 이야기 나올 때도 그랬다. 대전의 영화관이 지근거리인데 누가 영화 보러 가겠느냐는 그 말들 여전했다. 안남배바우 작은도서관을 지을 때도 ‘인구 1천명 남짓한 곳에서 책을 읽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농사짓느라 바빠서 책 읽을 시간도 없다’ 등 기상천외한 말들이 참 많았다. 지금 배바우 도서관은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안남면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바로 오는 따듯한 ‘둥지’ 같은 곳이다.

그런데 주민들의 요구가 이리도 빈번하고 간절한데도 생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결핍이 체화되어 있을뿐더러 농촌은 ‘웬만한 건 다 없다’는 인식이 내화되어서 아닐까? 오히려 있는 게 뉴스가 되고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솔직히 좀 짜증이 난다. 이미 농촌은 시장과 자본이 퇴각한 자리에 사회문화 서비스가 허허벌판이다. 인구가 없어 ‘예산 낭비’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그 이면에는 농촌 사람들을 무시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잘 가지 않고 연극 등도 잘 보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편견’이 짙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 사고들이 조합되면서 아예 설립 자체가 봉쇄당하는 것이다.

예산 낭비라는 말 안 듣게 규모에 맞게 지으면 된다. 작은 영화관을 짓듯이 작은 미술관, 작은 박물관, 소극장, 작은 스케이트장을 지으면 된다. 도시에서는 시장에 밀린 공공 서비스가 농촌에 얼마나 훌륭하고 다양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지 선보일 중요한 기회다. 키가 작다고 눈코입이 없나? 사람 없다고 다 줄이고 없애면 도대체 여기서 살라는 말이냐? 이사 가란 말이냐? 면 지역에 가면 병원은커녕 약국 하나, 보육시설 하나도 없는 곳이 수두룩 빽빽하다. 제발 정부, 지방정부 관계자들 각성하시라. 농촌이 어렵다 어렵다만 하지 마시고 와서 들으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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