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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0 16:11 수정 : 2019.06.10 19:30

박원순 시장과 구청장협의회 회장단, 지방 29개 기초자치단체장 대표들이 22일 오전 중구 서울시청에서 서울-지방 상생을 위한 협약 체결식을 마치고 기념시진을 찍었다. 연합뉴스

지난주 대구 중심가에서 ‘지방분권 뮤지컬’ 거리 공연이 있었다. 지방분권과 뮤지컬. 참 뜻밖의 조합이다. 궁금해서 검색해 봤더니, 대구광역시와 지방분권협의회가 분권을 쉽게 알리려고 뮤지컬을 만들어 몇차례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지방분권의 필요성, 지역소멸 극복 방안, 자치역량 강화와 시민참여 같은 딱딱한 내용들을 뮤지컬로 풀어냈다고 한다. 지난해 처음 시작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지역 언론들은 어려운 지방분권을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알리려는 지방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공연을 직접 못 봤으니 현장의 분위기나 시민들의 반응은 잘 모른다. 그런데 왠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오죽하면 지방분권을 주제로 뮤지컬까지 만들었을까 싶어서다. 때마침 3기 신도시 계획에 들썩이는 수도권을 보고 있자니 지방분권 뮤지컬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뮤지컬까지 만들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여전히 분권의 길은 멀고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지난달 서울시가 내놓은 ‘서울-지방 상생을 위한 서울 선언문’에 보내는 따가운 시선을 따라가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이 계획은 서울과 지역 간 심각한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고는 서울의 지속가능한 성장도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 해결 방안으로 서울과 지역이 사람과 정보, 물자를 교류하며 함께 성장할 사업 계획들을 내놓은 것이다. 서울시가 기초자치단체 29곳과 협약을 맺고, 앞으로 4년 동안 시 예산 2403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절박한 지역에서 보면 서울시의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장 비판이 쏟아졌다. 박원순 서울시장 개인 정치 일정에 맞춘 선심성 행정이라는 것이다. 있을 수 있는 비판이다. 얼마나 실효성 있게 꾸려나갈지에 대한 우려도 따른다. 그동안 선심 쓰듯 지역살리기 사업들을 던져놓고는 흐지부지된 사례가 많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까지는 합리적 비판과 우려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맥이 탁 풀렸다. “일자리를 포함한 모든 경제 발전은 대도시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지방 변두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수도권 과밀을 지적하면 집적효과를 모르느냐고 몰아붙인다. ‘지방=변두리’라는 편견을 숨기려 들지도 않는다.

관련 기사마다 달린 댓글들은 한술 더 뜬다. 서울시 세금으로 왜 지역에 인심을 쓰냐는 거다. 한 신문은 이런 여론을 부추기기라도 하듯 ‘서울시민 세금으로 지방 창업 돕는다’라는 기사 제목을 달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인터뷰는 지역에 대한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지방 창업이라고 해야 특산물 유통 같은 아이템 아니냐, 주위에 지방에서 창업하려는 이들은 없다’고 못박는다.

국토의 고른 발전에 대한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순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곳곳이 고르게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당위로 알았다. 그마저도 아닌 모양이다. 서울공화국 옹호론자들에게 수도권 집중 현상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수도권이 더 많은 사람과 물적 기반을 흡수하는 것이 오히려 당위로 통한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지역 간 불균형은 온 나라가 지혜를 모아도 쉽게 풀리지 않을 어려운 숙제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혹시라도 ‘변두리’가 서울공화국에 ‘기생’할까봐 경계하고 내치는 냉혹함마저 읽힌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렇다면 궁지에 몰린 지역을 포기하고 도태되도록 버려둬야 한다는 건가. 지역들이 서서히 소멸하는 동안 서울은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렇게 답했다. 최근 경북 북부지역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다. “서울에 사는 이 지역 출신들이 현재 여기 인구보다 더 많을 것이다. 논 팔고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킨 부모들처럼 서울은 지역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이제는 서울이 되갚아야 할 때다. 같이 가야 서울도 잘 살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위안이 되었다. 명확히 해두자. 오랜 세월 서울이 지역에 진 빚을 이제 되갚을 차례다. 그러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울 사람들,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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