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테이너’는 기술을 운용하고, 관리하고, 보수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는 천재적인 혁신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성실한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하지만 혁신가가 앞에서 주목받고 지원받고 성공하는 동안 메인테이너는 뒤에 남겨지고 잊히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주말 두 가지 눈물을 보았다. 5월27일에는 중국의 커제 9단이 한층 강해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국을 하던 중에 눈물을 보였다. 만 19살에 세계 최정상급의 바둑 실력을 갖췄지만 어쩌다가 무적의 바둑 인공지능 등장을 목격하는 역할을 맡은 청년의 슬픔이었다. 5월28일에는 일 년 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사망한 김모 군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9-4 승강장에 꽃과 메모지를 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만 19살이었던 김군은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는 스크린도어에 고장이 얼마나 잦은지, 그것을 고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기계와 대결하다 패한 인간이 흘리는 눈물과 기계를 고치다가 죽은 인간을 추모하는 눈물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이 처한 곤경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인간은 기계에 패하고서 밀려나거나 기계를 돌보다가 죽어나간다. 실제로 패배하거나 죽지는 않더라도 이 둘 중 하나가 자신의 처지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인간과 기계를 경쟁 구도로 보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주로 첫 번째 인간의 처지에 주목한다.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기계를 유지하고 수리하는 사람들은 화려한 혁명의 무대 뒤편에 숨어 있다. 그 이름조차 다 알려지지 않은 채 김군으로 남을 뿐이다. 기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미국 학자 앤드루 러셀과 리 빈셀은 작년에 발표한 ‘메인테이너에게 갈채를’이라는 글에서 하루하루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작동하도록 해주는 메인테이너(maintainer)의 존재와 역할에 주목할 것을 촉구했다. ‘유지하다’, ‘지속하다’, ‘지키다’라는 뜻의 동사 ‘메인테인’에서 생겨난 말인 ‘메인테이너’는 기술을 운용하고, 관리하고, 보수하는 사람을 뜻한다. 한마디로 기계를 지키는 사람이다. 네이버와 다음이 제공하는 영한사전에는 무성의하게도 “메인테인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을 뿐인 낯선 용어다. 러셀과 빈셀은 언론과 학계의 관심이 온통 혁신가, 발명가, 기업가에 쏠려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생활과 안전과 건강에 더 많이 기여하는 것은 메인테이너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천재적인 혁신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성실한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하지만 혁신가가 앞에서 주목받고 지원받고 성공하는 동안 메인테이너는 뒤에 남겨지고 잊히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요즘 유행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구의역 김군 같은 메인테이너의 자리는 위태롭다. 스마트 기술이 만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 늘어날지 학계와 언론에서 정답 없이 갑론을박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김군이 기계를 고치기 위해 뛰어다니지만, 구의역 사고 후 일 년이 지나도록 김군들의 고용과 작업 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충분하지 못했다. 또 자율주행차가 전방에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을 피하기 위해 운전대를 돌려 옆에 비켜서 있던 한 명을 치는 것과 그대로 주행해서 두 명을 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윤리적인지 따지려는 논의가 무색하게도, 열차 지연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채 선로 유지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 두 명이 케이티엑스(KTX) 열차에 치여 숨지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작업용 손수레를 선로에서 급히 치우느라 열차를 피하지 못했다.(2016년 9월13일) 이세돌과 커제를 이긴 인공지능이 관리를 맡으면 앞으로 이런 불행은 사라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무엇이든 기계가 인간보다 잘할 것이라는 말은 인간 없이 작동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품게 한다. 하지만 완전히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란 먼지가 끼지 않는 센서, 부식되지 않는 재료, 끊어지지 않는 연결, 고장나지 않는 기계로 된 세계, 즉 비현실적인 세계다.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계는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김군들이 매일같이 살피고 수리하지 않으면 곧 무너지고 만다. 자율주행차 같은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를 보여준다고 해도, 그 미래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달리던 자율주행차가 고장으로 오도 가도 못할 때 우리를 구하기 위해 숨차게 달려올 김군들이다. 지금처럼 그때도 김군들은 위험을 안고 일할 것이다. 지난 주말 김군을 추모하는 많은 이들이 흘린 눈물은 기계와 우리를 함께 지켜주는 메인테이너들을 지켜내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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