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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21 17:46 수정 : 2017.12.21 19:34

사람처럼 일하는 기계는 없다.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을 뿐. 사람 없이 일하는 기계도 없다. 설치하고, 운용하고, 점검하고, 보수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개입하지 않으면 기계는 일을 망치거나 사람을 해친다. 사람 없는 기계는 위험하다. 한 명 더 필요한 이유다.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사람 없이 일하는 기계와 사람처럼 일하는 기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 불리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약속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계 같지 않은 기계들이다. 자율주행차, 무인공장, 인공지능 판사, 로봇 선생님. 이런 미래형 기계들은 사람 없이 일하기 때문에 싸고 안전하며, 사람처럼 일하기 때문에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율적이고 인간적인 기계들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적은 듯하다.

제주의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씨의 죽음은 이런 미래의 꿈에 빠져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그는 11월9일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목과 몸통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고 19일에 숨을 거두었다. <한겨레> 기사는 “관리자 없이 일하다 기계에 눌려”라는 문구로 이 사고를 요약했다.

이민호씨가 다루던 기계는 사람 없이 일하지 못했다. 이민호씨는 공장 안을 뛰어다니며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살펴야 했다. 기계는 자꾸 고장났고, 현장실습생은 고장난 기계를 고치는 일도 했다. 그러느라 이민호씨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이민호씨의 목숨을 앗아간 기계는 사람처럼 일하지도 못했다. 기계는 접근하는 사람을 인식해서 경고를 보내거나 사람이 끼이는 사고가 났을 때 자동으로 멈출 줄을 몰랐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기계를 소유한 사람이 그런 기능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생은 사람 같지 않은 기계 옆에 혼자 남겨졌다. 프레스에 몸이 눌릴 때에도 혼자였다. “파렛타이져 혼자 보고 있습니다. 한 명 더 부탁드립니다.” 관리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혼자 기계를 돌보다가 죽었다(<제이티비시>(JTBC) 보도). 1970년 이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을 계속 들어왔던 한국 사회가 2017년에는 “한 명 더 부탁드립니다”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공손해서 더 아픈 부탁이다.

한 명 더 보내달라는 이민호씨의 요청은 무시되었다. 이민호씨만이 아니다. 이용자가 많아 ‘지옥철’로 불리는 서울지하철 9호선에서는 기관사가 충분히 쉬지 못한 채 다음 운행에 투입되고, 많은 역이 1인 근무 체계로 운영된다.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은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11월 말 파업을 했다. 제대로 점검을 받지 못한 타워크레인에 올라 일해야 했던 사람들은 자꾸 추락하고 숨졌다. 올해에만 17명이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타워크레인 수가 배로 늘었지만 이를 설치하고 해체하는 전문인력은 거의 늘지 않았다(<한겨레> 보도). 곳곳에서 혼자 기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명 더 보내달라는 신호를 소리 없이 전송하고 있다.

사람처럼 일하는 기계는 없다.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을 뿐. 사람 없이 일하는 기계도 없다. 설치하고, 운용하고, 점검하고, 보수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개입하지 않으면 기계는 일을 망치거나 사람을 해친다. 먼 미래에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만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모든 기계가 이미 그렇다. 사람 없는 기계는 위험하다. 한 명 더 필요한 이유다.

기계가 필요한 곳에 기계를, 사람이 필요한 곳에 사람을. 뻔하기 짝이 없는 이 말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데에 엄청난 지식과 노력과 결단이 필요하다. 기계를 만들고, 공장을 관리하고, 기업을 경영하고, 현장을 감독하는 사람들이 모두 생각을 바꾸고 행동해야 한다. 기계공학, 로봇공학, 산업공학, 경영학, 사회학, 법학, 생리학, 보건학 등 모든 학문 분야가 참여할 수 있다. 기계 자리에 기계를 놓고, 사람 자리에 사람을 놓는 것은 정치인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 당연한 일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한국 사회는 모든 이민호씨와 그 가족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이민호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그 친구들, 그리고 기계 앞에 혼자 서 있다 쓰러지는 모든 사람을 대변해서 이렇게 물었다. “학생이잖아요. 실습생이잖아요. 숙련공 직원이랑 같이 일해야죠. 그게 안 되면 2인1조로라도 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이 혼자서 그냥 일반 직원과 다름없이 그 위험한 곳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한겨레> 기사). 이게 정말 맞습니까. 혼자여도 괜찮습니까. 한 명 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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