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수 아빠는 모든 세월호들을 보았다. 도면으로도 보고 실물로도 보았다. 동수 아빠는 이제 세월호의 침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는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고, 선체조사위원회와 정부는 설명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이것은 또한 한국 과학의 책무이기도 하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정성욱씨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1월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인양 대국민 설명회’에서였다. 그는 단원고 2학년 7반 정동수군의 아빠다. 동수는 로봇 제작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과학자가 되어 아빠에게 로봇을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동수 아빠는 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이 되어 동거차도에 천막을 치고 로봇 대신 세월호를 보면서 살고 있었다. 그는 설명회장 제일 앞줄 국회의원들이 앉은 곳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국민의례 순서가 되자 동수 아빠는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경례했다. 무엇을 다짐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동수 아빠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인양된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에서였다. 작년 여름 미국 드렉설 대학의 스콧 게이브리얼 놀스 교수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를 방문한 다음 배를 살펴보러 간 길이었다. 인양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인양분과장이었던 동수 아빠는 몇 달째 세월호를 지키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배에서 화물과 뻘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구겨진 자동차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아이들의 핸드폰과 가방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유해가 수습되는 것을 보았다. 놀스 교수와 나는 이 거대하고 처참한 배에서 사고의 원인을 찾아낸다는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동수 아빠는 그 끝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지난겨울 세 번째로 동수 아빠를 만난 곳은 네덜란드의 마린 연구소였다. 그는 가족협의회를 대표해서 세월호 모형시험을 참관하러 와 있었다. 동수 아빠는 이십오 대 일로 축소해서 만든 9929번 모형 배가 옆으로 넘어지게 하는 시험과 삼십 대 일로 축소해서 만든 9930번 모형 배를 침몰시키는 시험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9930번은 세월호처럼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칠한 모형이었다. 객실이 있던 에이(A) 갑판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동수 아빠는 책상에 고개를 묻고 엎드렸다. 네덜란드 엔지니어와 선체조사위원회 조사관들 모두 그 배 안에 동수와 그의 친구들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배 전체가 물에 잠겨 시험이 끝나고 나서야 동수 아빠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러고도 몇 번의 시험을 보고 또 보았다. 모형시험이 없는 토요일 저녁 우리는 연구소 근처 펍에서 맥주를 한잔 마셨다. 인양된 세월호를 일 년 가까이 지켜온 그는 지쳐 있었다. 배는 올라왔지만 진실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상황을 그는 그저 버티고 있었다. 자식을 앗아간 배를 일 년 동안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아직 어떤 과학자도 연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수 아빠 말고는 그런 데이터가 없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지난 17일 놀스 교수와 나는 세월호 같은 재난을 조사하는 위원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탁상공론을 ‘특별기고’라며 신문에 실었다. 바로 그날 동수 아빠는 목포의 배 옆에서 머리카락을 다 밀고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모였다는 위원회들이 갑론을박하는 사이, 이 사회의 잣대로는 과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동수 아빠가 진상 규명을 위해 자기 몸을 내놓았다. 동수 아빠는 모든 세월호들을 보았다. 도면으로도 보고 실물로도 보았다. 동거차도에서도 보고 목포에서도 보았다. 배 안에 들어가서도 보았고 배 밖에서도 보았다. 아이들 핸드폰에 저장된 영상으로도 보았고,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가 찍은 영상으로도 보았다. 마린 연구소 9929번 모형으로도 보았고, 9930번 모형으로도 보았다. 세월호 조타실을 재현한 시뮬레이터 안에 들어가 그날 아침 배에서 보였을 병풍도와 동거차도도 보았다. 세월호라면 누구보다 많이 보고 오래 보면서 그는 세월호 전문가가 되었다. 동수 아빠는 이제 세월호의 침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는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고, 선체조사위원회와 정부는 설명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이것은 또한 한국 과학의 책무이기도 하다. 한 해에 에스시아이(SCI) 논문을 오만 편 넘게 발표하는 나라에서 배 한 척이 왜 가라앉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이는 과학과 국가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슴에 손을 얹고 국가에 예를 표하던 동수 아빠에게 우리는 정중하게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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