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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1 17:55 수정 : 2019.03.21 19:21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어느덧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 된 미세먼지는 공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갈라놓는다. 많은 이들은 이제 ‘이 땅 위의 공기’와 ‘내 코앞의 공기’를 나눠서 생각한다. ‘공공의 공기’와 ‘개인의 공기’라고 할 수도 있다. 전자가 공동체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매질로서 공기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이미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공기다. 공기는 이른바 ‘호흡 공동체’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기도 하고, 공동체 없는 ‘각자도생’을 위한 상품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아침마다 스마트폰 앱으로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면서 호흡 공동체를 상상하고 그 일원이 된다. 호흡 공동체는 상상되는 동시에 체감된다. 문제는 이 상상과 체감이 공동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이다. 그냥 두면 우리의 관심은 호흡 공동체의 공기에서 각자도생의 공기로 빠르게 옮겨간다. 체계적 조치를 통해 미세먼지 발생량이 줄어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각자 마스크, 방독면, 공기정화기를 찾아 나선다. 내 코앞의 공기를 불안해하며 각자도생의 길로 나가는 대신 공기 자체를 바꿔내는 행동으로 호흡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자기 공기를 찾아 흩어지는 대신 어떻게 공동체의 삶의 기본 조건으로서 공기의 조건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은 호흡 공동체의 공기와 각자도생의 공기 모두에 관련이 있다. 미세먼지 배출원을 찾아내고 측정하고 모델링하고 예측하는 과학기술도 있고, 마스크와 공기정화기를 설계하고 설치하는 과학기술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공적 과학기술 자원이 어느 공기에 더 많이 배분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호흡 공동체의 공기에 필요한 것은 소신 있는 규제와 성실한 유지관리를 돕는 과학이다. 각자도생의 공기에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디자인이 우아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 호흡 공동체의 각성과 행동을 이끌 것인가, 각자도생을 위한 작은 공기들을 생산하는 데서 멈출 것인가.

최근 논란이 된 옥외 공기정화기 설치 계획의 문제는 그것이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옥외 공기정화기가 이미 진행 중인 공기의 공포화, 개인화, 상품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옥외 공기정화기는 그 주위의 공기를 마실 만하게 해주는 대신 그것이 없는 곳의 공기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 공기정화기의 색깔 표시등이 공기 상태를 알려주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상시 경계 태세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공기정화기를 설치해주지 않는 곳은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마련하려 한다. 이 땅을 공기정화기로 촘촘하게 다 채울 때까지 우리의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 옥외 공기정화기는 마치 호흡 공동체를 위한 공적 제도인 것처럼 들리지만, 결국 공동체는 자기 공기정화기를 갖춘 개인들로 흩어질 것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이번주에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옥외 공기정화기와 인공강우 실험에 대한 비판을 언급하며 “중요한 건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과연 희화화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긴급 상황에 실시하는 과학적, 정책적 실험을 무조건 비판할 이유는 없다. 다만 시민들은 정부가 공기를 관리하는 대신 공기정화기를 관리하는 쪽으로 책임을 옮기는 듯한 모습을 우려한다. 대형 옥외 공기정화기는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기 주머니를 하나씩 달아주는 효과가 있겠지만, 호흡 공동체에 필요한 일은 이 땅 위의 공기 전체를 적극적인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시민들은 정부의 공기관, 공기에 대한 철학을 묻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는 미세먼지를 ‘사회 재난’의 범주에 넣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에 앞서 미세먼지 사태를 ‘자연 재난’과 ‘사회 재난’ 가운데 무엇으로 볼지 부처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개념과 분류를 가지고 거대한 공기를 맞닥뜨리는 곤경에 처해 있다. 자연적 공기와 사회적 공기가 따로 있지 않고, 개인의 공기와 공동체의 공기가 따로 있지 않다. 공기는 자연과 사회의 경계,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를 뛰어넘는 생각과 실천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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