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지난 23일 스웨덴 출신의 16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가 프랑스 의회의 연단에 섰다. 등교 거부 운동을 비롯한 국제적인 기후위기 행동의 아이콘이 된 툰베리는 의회의 초청을 받아서 온 것이었지만, 일부 보수 정당 의원들은 툰베리의 연설을 보이콧했다. ‘종말의 구루’가 떠드는 불길한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이도 많고 권력도 많은 정치인들이 왜 한 청소년의 연설을 두려워했을까. ‘종말의 구루’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12분짜리 프랑스 의회 연설 영상을 찾아보았다. 툰베리의 연설은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선동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그저 과학자들이 작성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 보고서를 되풀이하여 인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답하기 위해) 저는 최신 아이피시시 보고서 제2장, 108쪽을 참조하고자 합니다.” 거기에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확률이 67%가 되려면 2018년 초부터 계산해서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가 420기가톤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과학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고 인용하는 것은 과학 전공자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늘 하는 일이다. 그러나 툰베리와 그의 동료들이 아이피시시 보고서에 담긴 숫자를 인용하는 것은 과격한 정치적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의 기후행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정치인, 관료, 기업가, 언론인들에게 툰베리는 다시 한번 과학을 인용했다. “과학은 명확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오직 일치된 과학을 전달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눈총을 받는 툰베리는 스스로를 ‘어린이’라고 부르면서 ‘어린이’의 말은 듣지 않아도 좋지만 제발 과학자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과학의 뒤에서 단결하십시오!” 같은 날 서울의 그린피스 한국사무소 회의실에서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한국 시민·종교·사회단체, 정당 집담회’가 열렸다. 미국 뉴욕에서 9월23일에 개최될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각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국제적 ‘기후파업’에 동참하는 한국의 시민행동을 기획하는 자리였다. 이 집담회 제안문도 과학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파국적인 기후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탄소예산’을 통해서 전 지구적 기온 상승 2도 혹은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 남은 시간이 10년 정도밖에 없다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위기를 말하는 자리에서 과학과 과학자는 반가운 존재였다. 집담회에 참석한 한 과학기술인단체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사회자는 이렇게 환영했다. “우리가 과학자들로부터 배워서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이 직접 함께해주신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물론 기후위기 집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평소 과학에 대해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과학기술이 현재의 위기를 일으킨 문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과학기술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해줄 희망이라고 믿을 것이다. 생명의 기원과 종의 진화와 멸종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툰베리의 요청대로 과학으로 단결하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환경운동가, 노동운동가, 인권운동가, 신부님, 수녀님들이 한 회의실에 모여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분야와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과학과 과학자는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이날 집담회에서 한국의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9월21일 토요일에 열기로 결정되었다. 기후파업과 비상행동을 실시하는 데 이어 지구와 인간이 심각한 ‘비상사태’에 돌입했음을 선언하는 것은 과학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과학 논문과 보고서를 참조하고 인용하는 것만으로 정치인과 기업과 언론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23일 그린피스 회의실에서 그러했듯이, 기후와 지구와 인간의 미래를 다루는 공론장에 과학자의 자리가 없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과학과 과학자는 이제 공감에서 행동으로 나아가는 정치적, 윤리적 과정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과학은 언제나처럼 복잡한 문제의 일부인 동시에 해법의 일부가 될 것이다.
칼럼 |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과학으로 단결하기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지난 23일 스웨덴 출신의 16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가 프랑스 의회의 연단에 섰다. 등교 거부 운동을 비롯한 국제적인 기후위기 행동의 아이콘이 된 툰베리는 의회의 초청을 받아서 온 것이었지만, 일부 보수 정당 의원들은 툰베리의 연설을 보이콧했다. ‘종말의 구루’가 떠드는 불길한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이도 많고 권력도 많은 정치인들이 왜 한 청소년의 연설을 두려워했을까. ‘종말의 구루’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12분짜리 프랑스 의회 연설 영상을 찾아보았다. 툰베리의 연설은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선동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그저 과학자들이 작성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아이피시시) 보고서를 되풀이하여 인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답하기 위해) 저는 최신 아이피시시 보고서 제2장, 108쪽을 참조하고자 합니다.” 거기에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확률이 67%가 되려면 2018년 초부터 계산해서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가 420기가톤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과학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고 인용하는 것은 과학 전공자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늘 하는 일이다. 그러나 툰베리와 그의 동료들이 아이피시시 보고서에 담긴 숫자를 인용하는 것은 과격한 정치적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의 기후행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정치인, 관료, 기업가, 언론인들에게 툰베리는 다시 한번 과학을 인용했다. “과학은 명확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오직 일치된 과학을 전달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눈총을 받는 툰베리는 스스로를 ‘어린이’라고 부르면서 ‘어린이’의 말은 듣지 않아도 좋지만 제발 과학자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과학의 뒤에서 단결하십시오!” 같은 날 서울의 그린피스 한국사무소 회의실에서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한국 시민·종교·사회단체, 정당 집담회’가 열렸다. 미국 뉴욕에서 9월23일에 개최될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각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국제적 ‘기후파업’에 동참하는 한국의 시민행동을 기획하는 자리였다. 이 집담회 제안문도 과학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파국적인 기후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탄소예산’을 통해서 전 지구적 기온 상승 2도 혹은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 남은 시간이 10년 정도밖에 없다고 계산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위기를 말하는 자리에서 과학과 과학자는 반가운 존재였다. 집담회에 참석한 한 과학기술인단체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사회자는 이렇게 환영했다. “우리가 과학자들로부터 배워서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이 직접 함께해주신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물론 기후위기 집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평소 과학에 대해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과학기술이 현재의 위기를 일으킨 문제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과학기술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해줄 희망이라고 믿을 것이다. 생명의 기원과 종의 진화와 멸종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툰베리의 요청대로 과학으로 단결하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환경운동가, 노동운동가, 인권운동가, 신부님, 수녀님들이 한 회의실에 모여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는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분야와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과학과 과학자는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이날 집담회에서 한국의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9월21일 토요일에 열기로 결정되었다. 기후파업과 비상행동을 실시하는 데 이어 지구와 인간이 심각한 ‘비상사태’에 돌입했음을 선언하는 것은 과학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과학 논문과 보고서를 참조하고 인용하는 것만으로 정치인과 기업과 언론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23일 그린피스 회의실에서 그러했듯이, 기후와 지구와 인간의 미래를 다루는 공론장에 과학자의 자리가 없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과학과 과학자는 이제 공감에서 행동으로 나아가는 정치적, 윤리적 과정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과학은 언제나처럼 복잡한 문제의 일부인 동시에 해법의 일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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