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0.03 16:24 수정 : 2019.10.03 19:29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2016년 11월12일 광화문에서 ‘사상 최대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 주최측은 100만명이 모였다고 추산했고, 경찰은 26만명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한주 전인 11월5일에 열린 촛불집회 참가자 수를 놓고서는 주최측은 20만명, 경찰은 4만5천명을 제시했다. 당시 논란을 지켜보던 과학자들은 네 배나 차이가 나는 추산값들 사이에서 더 현실적인 숫자를 찾아내기 위해 나섰다. 광장의 면적과 사람의 밀도를 따지고, 참가자의 유입과 이동 경로를 고려해서 나름의 계산값을 내놓았다. 우주에서 별을 세듯이 집회 사진에서 촛불을 세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람 수 세기는 한국의 과학자가 국정농단 사태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통로였다.

지난 9월28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개혁 촉구 집회에 참가한 사람이 200만명이라는 주장과 5만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집회를 지지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이 제시하는 숫자가 4배가 아니라 40배 차이가 난 것이다. 극도로 분열된 숫자를 놓고 과학자들이 다시 나서야 할까? 우리는 검찰개혁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사람의 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아니, 그 숫자를 꼭 알아내야만 할까?

집회에 나온 군중의 수는 흥미로운 대상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측정해서 계산하고 싶은 숫자이면서도, 진짜로 정확히 알아내기는 불가능한 대상이다. 티켓을 끊고 들어가는 공연장의 청중과는 성격이 다르다. 공연장 청중은 일일이 세는 것이 가능하지만, 집회 군중은 그렇지 않다. 주장하거나 추산할 수 있을 뿐이다. 집회를 지지하는 쪽은 항상 숫자를 키우려 하고, 집회를 비난하는 쪽은 항상 숫자를 줄이려 한다. 양쪽 모두 정말로 정확한 숫자를 알아내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 주최 7차 촛불집회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려 참가 시민들이 촛불로 파도를 만들며 검찰 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집회나 행사에 참석한 군중의 수를 가지고 다투는 일은 국외에서도 흔하다. 지난 6월9일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을 때 주최측은 참가자 수를 103만명으로, 경찰은 24만명으로 추산했다.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때와 비슷하게 4배 정도 차이가 났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날인 7월1일에 매년 열리는 집회에 나온 사람도 주최측은 55만명, 경찰은 19만명으로 다르게 추산했다. 역대 7월1일 시위 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는 2003년의 50만명보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는 숫자였다.

홍콩에서도 시위 참가자 수를 과학적으로 집계해서 민의를 가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홍콩대학의 폴 입 교수 연구팀은 올해 7월1일 시위대의 행진 경로 두 곳에 아이패드 여러 대를 설치한 다음 지나가는 사람들을 촬영했다. 인공지능 모델을 훈련시켜서 카메라에 잡힌 대상의 색과 모양 등을 바탕으로 사람과 물체를 구별하고 사람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분석하도록 했다. 카메라 옆에 사람을 배치하여 육안으로도 관찰해서 인공지능의 분석을 보완했다. 연구팀이 계산한 올해 7월1일 시위대의 수는 26만5천명이었다.

우리도 드론과 얼굴인식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여 집회 군중 세기 기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할까? 이것은 과연 민의를 충실히 파악하고 대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민주적 기술일까? 지난 1일 홍콩 경찰이 시위에 참가한 10대 학생에게 총을 쏘아 중상을 입혔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으면, 거리에 나온 군중이 몇인지, 누구인지, 어느 길로 행진했는지 파악하는 기술이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사용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는 사람과 조직을 신뢰할 수 없다면, 군중의 수를 정확하게, 낱낱이 세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숫자 세기는 군중을 추적하고 통제하려는 욕망과 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군중 수는 항상 정치적인 숫자이고, 군중 수 세기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기술이다.

사람 수를 정확하게 세지 못해서 집회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3년 사이에 4배에서 40배로 늘어난 군중 추산값 차이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 수를 세는 과학적 기법의 부재가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정치적 역량의 부재다. 집회 참가자 수를 놓고 하는 말싸움에는 끝도 없고 답도 없다. 오만이든 이백만이든 시민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논쟁하고 협상해서 법과 제도를 바꾸는 싸움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