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8 18:10
수정 : 2019.11.29 02:36
전치형 ㅣ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다음주 화요일에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토론회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어 사전에 “어떤 일이 실패하거나 무산된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등록되어 있는 ‘휴지조각’은 주로 부도난 어음 같은 것을 묘사할 때 쓴다. 조사보고서가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누가 낸 어떤 보고서가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것일까?
궁금해서 살펴보니 ‘문재인 정부의 중대재해사업장 조사위원회 권고와 이행실태 점검 토론회’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얼마 전 ‘김용균 보고서’를 낸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와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집배원 노동조건개선 기획추진단,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 구의역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 등에서 참여한다. 그러니 토론회는 사람이 일하다가 죽거나 다친 일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다룰 것이고, 거기에는 사람이 더 죽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혀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 권고가 휴지조각처럼 무시되거나 구석으로 처박힌 상황일 것이다.
사람을 살리려는 말들이 휴지조각 취급을 받는 것은 그 말들이 얇고 가볍기 때문인가. “빛나는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말은 늘 넘치고 넘친다”는 김훈 작가의 말(<경향신문>)처럼 이미 너무 많은 훌륭한 말들이 나와서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인가. 조사보고서라는 틀에 담은 바싹 마른 말들로는 사람이 더 죽지 않게 할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 조사보고서들의 운명을 생각해본다. 사회과학자, 자연과학자, 인문학자, 공학자, 또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이 조사하고 분석하고 작성해서 제출한 문서는 다 어디로 가서 휴지조각이 되는가. 보고서를 받아든 기관은 보고서에 담긴 말을 왜곡해서 내보내기도 하고, 마치 어느 보고서에서도 그런 말을 본 적이 없다는 태도로 이상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차마 휴지조각 취급까지는 할 수 없는 보고서들은 정치권과 정부 기관에서 그냥 깔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혐오 발언에 대한 진정을 각하함으로써, 지난달 자체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정치인 등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혐오표현에는 긴급하고 강한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보고서의 메시지는 위원회의 단호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물론 이런 경우를 대비해 많은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이 보고서는 ‘혐오표현 리포트’ 작성팀의 연구 결과물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문구가 삽입돼 있다. 보고서를 쓴 이들의 생각이 연구용역을 준 기관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이라면 그 이름으로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이 기관의 공식 입장과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밝혀야 한다. 변명할 여지를 남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변명을 해달라는 말이다.
과학계의 조사보고서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다. 다음주 토론회에서 논의될 중대재해사업장 보고서들과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내놓은 지구 온도 상승에 대한 보고서는 한국에서 거의 휴지조각 취급을 받고 있다. 아마도 과학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조사보고서라고 부를 만한 문서를 못 본 척하거나 없는 셈 치는 분위기다. 당장 눈앞에서 떨어지고 끼이고 깔려서 죽는 사람들을 살리자는 보고서도 휴지조각이 되는 마당에, 기후위기가 닥치고 있으니 지구를 지키자는 말이 무시당하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책을 바꾸는 것은 단지 사람을 많이 모아놓고 설문조사나 투표를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한국과 국제 사회가 축적한 최선의 지식을 흡수하고, 그런 지식이 도출된 현장의 실태를 면밀히 확인하고, 그로부터 우리가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을지 제안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어떻게든 국회의원과 관료와 언론의 마음을 움직여 단 하나의 법률, 시행령, 규정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오늘도 보고서와 논문을 쓰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많다.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변화는 이들의 무거운 말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지 않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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