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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0 20:33 수정 : 2016.10.21 08:52

서영인의 책탐책틈

선생(先生): 1.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2.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선생님은 선생을 높여 부르는 말이니,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2번 정의의 경우에 선생님은 높임을 또 높이는 말, 이중 존경어인 셈이다. 이미 높임이 과하다. 어쩌면 2015년 이후 이 ‘선생님’의 또 다른 정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문학계에서 비평가를 지칭하는 말. 문학작품의 해석과 평가를 독점하는 권위를 누려 왔지만, 지나친 전문용어의 남발이나 과장된 평가 때문에 작가나 독자의 신뢰를 상실하고 급기야 문학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받는 상황에 빗대어 일종의 야유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게 다 천명관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평가와 심사가 작가의 문학적 성취와 문단에서의 위치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단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악스트>(Axt) 창간호)이 되었다는 인터뷰 이후 ‘선생님’은 그냥 단순한 호칭이 아니게 되었다. 문인이 되는 기술을 가르치고, 등단과 문학상을 심사하고,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면서 알게 모르게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놓”는 존재들로 ‘선생님’이 정의되기에 이르렀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흉흉한 진단 한가운데 ‘선생님들’이 있는 셈이다. 단 한 단어로 한국문학의 문제를 이렇게 멋지게 요약하다니, 역시 소설가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후 “아닌 밤중에 선생님” 소리나 듣게 되었다(<한국일보> 2015. 7. 1)고 서평가 금정연처럼 투덜거릴 수나 있으면 좋겠지만, 원했건 안 원했건 십수년 선생님 소리를 별생각 없이 들어온 주제에 그럴 수도 없다. 대단한 권위를 누린 적도 없는 일개 비평가인지라, 뭔가 변명을 해야 할 것도 같고, 거 참 맞는 소리라고 맞장구를 치고 싶기도 해서, 좀 심란하다.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평가란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벌려 놓는 사람이 아니라 그 거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라고. 작가와 독자가 어떻게 만나고 어떤 거리로 소통하거나 불통하는지, 그 거리들이 어떻게 우리 시대의 문화와 감수성이 되는지를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와 독자가 잘 만나기 위해서라도 비평가는 필요하지 않을까. 궁리한 끝에 스스로 존재감을 채워 본다지만.

서영인 문학평론가
일단 그걸 잘하고 나서 보자고 한다면, 금방 머쓱해진다. 그러니까 그걸 하는 사람이 왜 꼭 ‘선생님’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유구무언이다. 천명관이 ‘선생님’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랬겠는가. 어쨌거나 뭘 좀 바꿔보자는 소리인 줄 모르는 게 아니다. 비평이 문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비평이 맡아 온 역할과, 그 비평들로 구성된 시스템이 문제라는 게 핵심. 그러니까 여기서 비평의 역기능이 아니라 순기능을 운운하는 당연한 말씀은 별 의미가 없다. 차라리 선생님들이 궁지에 몰린 사이에, 그 덕분에 지금까지 못 본 이야기들이 활개를 칠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 기왕지사 체면은 구겨졌고, 이 틈에 다른 판을 노리는 작가들이 많아진다면, 선생님들의 수난시대, 나쁘지 않다. 구조가 바뀌면 말의 감각도 바뀐다. 언젠가쯤, ‘선생님’이 존중과 우정의 뜻으로 훈내를 풍기게 될지도.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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