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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2 20:02 수정 : 2017.10.12 20:45

[서영인의 책탐책틈]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지음/민음사(2017)

재난 서사이거나 종말을 가정한 묵시록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면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설정한 가상의 판타지이거나. 백신을 개발할수록 점점 진화하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구. 순식간에 천 명, 만 명, 십만 명이 죽어나가는 세계. 처음에는 바이러스가 문제였으나 그다음에는 약탈과 살인과 방화가, 자살과 착란과 광기가 연쇄적인 재난이 되었다. 거기서도 사람들의 탈출로 돈을 버는 사람들과 떠날 수 없는 사람과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구분되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바이러스의 창궐뿐, 나머지는 이미 지구 어디에선가, 지금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먼저 난민. 바이러스를 피해, 약탈과 전쟁과 기아를 피해 목적도 없이 떠도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다. 자동차에 기름과 먹을 것을 싣고, 또는 걸어서, 어딘지 알 수 없는 안전한 곳을 찾아서, 국경을 향해 가고 또 간다. 하나의 전쟁을 피하면 또 다른 전쟁이 오고, 추위와 허기를 견디면 또 다른 죽음의 공포가 밀려온다. 어떤 땅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불길한 재앙의 표식일 뿐이다. 바이러스는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 난민을 우리 눈앞으로 당겨 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혐오. 함께 가자는 ‘지나’의 말에 ‘도리’는 답한다. “어째서 내 자식은 죽고 저 아이는 살아 있는가. 내 아이가 먹었어야 할 밥을 왜 저 아이가 먹고 있는가. 그런 눈빛”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불행한 타인을 통해 자신의 안전을 안도하며, 더 약한 자를 짓밟음으로써 자신의 건재를 확인하는 방식의 폭력. 너무 빈번히 우리는 그런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도리’의 말이 맞았다. 총격전 끝에 가족이 죽자 나머지 가족들은 가족이 아닌 ‘도리’를 혐오함으로써 그들의 결속을 다졌다. ‘길 가다 주운 여자’로 ‘도리’를 멸시함으로써 그들의 우월감을 유지했고, 함부로 짓밟아도 좋은 존재로 ‘도리’를 취급함으로써 생존을 명분으로 한 자신들의 죄를 함부로 용서했다. 무리를 지어 서로를 죽이면서 살아남으려는 세계에서 남자들은 병사가 되고 여자들은 병사들에게 강간당했다.

마지막으로 사랑. 너무나 분명한 ‘난민’과 ‘혐오’의 현실을 ‘사랑’이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난민’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혐오’에 질식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을 지킬 수는 있다. ‘지나’와 ‘도리’의 서로에 대한 지극하고 깨끗한 마음과, 이미 ‘도리’에게 가버린 ‘지나’를 기다리는 ‘건지’의 마음이, 약하고 어린 ‘미소’를 돌보고 지키는 ‘도리’의 마음이, 포기했던 가족 속의 가족을 다시 찾으려는 ‘류’의 마음이 서로 다르지만 마땅히 존중되는 ‘각자의 사랑’과 ‘각자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 ‘사랑’과 ‘기적’이 “살인과 폭력과 치욕과 체념”을 뚫고 나가, “가장 나쁜 것 속에서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잊지 않고 그들을 계속 나아가게 한다. 소설 속의 그들은 그렇게 살아남았고, 사랑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치욕이든 그 마음이 가는 길을 끝까지 찾아야 할 우리가 소설 밖에 남아 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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