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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4 20:25 수정 : 2018.05.24 20:39

[책과 생각] 서영인의 책탐책틈

서른의 반격
손원평 지음/은행나무(2017)

서른이 지난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내 서른이 어땠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누구는 좋을 때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 버린 것 같아 초조했었나 어땠나. 화나는 것도 많고 싫은 것도 많아서 매사에 까칠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셈치고는 무난했던 것 같기도 하고. ‘반격’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던 것 같다. 잠깐 내 서른을 생각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서른이 있다. 섣불리 거기서 내 서른을 회고하는 것은 좋지 않은 관행이다. <서른의 반격>을 읽으며 내가 제일 먼저 배운 것이다.

‘잔치가 끝났다’는 최영미의 서른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온다는 최승자의 서른에 덧붙여 지금의 서른들을 비교하거나 계보화하려는 생각도 그만두자. 어떻든 지금 중요한 것은 대기업 산하 인문학 문화센터의 인턴직원인 1988년생 김지혜의 서른이다. 정직원이 되어 자신만의 문화기획을 해 보겠다는 꿈이 있지만 구식 복사기가 멈추지 않게 용지 공급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상사의 카톡을 못 본 척하거나, 가끔 가상의 친구를 들먹이며 회식자리를 빠져나오는 것 정도의 숨통으로 그 서른을 견디는 사이, “꼼수, 눈치, 요령의 삼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라는 원칙만 확고해졌다. 반격을 시도해 보지만 신통치는 않았다. 동업자의 레시피를 훔쳐 요식업자로 성공한 국회의원에게 달걀을 던지고, 무명작가의 시나리오를 무단사용해 흥행가도를 달리는 영화의 무대를 습격해 보지만, 옳지 않은 일에 부끄러움을 투척했다는 것으로 위안삼기에는 상처가 너무 컸다.

사소한 반격도 자꾸 하면 늘고, 상처가 쌓이면 내공이 된다. 아날로그적 힐링을 내세운 사업체에 재취업한 김지혜 이야기로 끝났다면, 사소한 반격으로 김지혜를 움직인 이규옥이 마침내 대기업의 내부고발자로 보란 듯이 반격을 완성했다면 나는 이들의 서른에서 관심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진짜 반격이 아니라고, 자꾸 다른 반격이 등장했으므로 나는 이들의 서른이 계속 궁금했다. 마침내, 회심의 일격이라기에는 너무 소박했지만, 그래도 나는 김지혜가 종합쇼핑몰로 변한 문화센터의 공터에 아무나 설 수 있는 무대를 기획했을 때, 잠시 뭉클했다. 인턴시절에 복사와 의자 정리와 상사의 눈총을 피해 있지도 않은 친구를 만난다는 핑계로 드나들었던 그 벤치가 김지혜식 반격의 모태였다. 스스로를 폄하하고 자존감을 죽여 가며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곳에서 어정쩡했던 그 시절을 반격의 자산으로 삼은 김지혜는 과연 ‘미스 와이즈’였다. 버릴 것 하나 없는 서른이었고, 결국 김지혜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반격을 완성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서른이 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 서른도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덩달아 뿌듯해졌다.

서사는 매끈하다기보다는 울퉁불퉁한 편이었고, 패기 넘치는 제목에 비해 반격은 너무 소박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미리 단정하거나 함부로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모르는 그들의 서른을 힘껏 더 상상해 보기로 했다. 둥글어지기보다는 울퉁불퉁한 채로 단단해지기를, 소박하되 성글지는 않기를 은밀하게 응원하면서.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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