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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1 16:27 수정 : 2016.11.11 19:49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며칠 전에 치러진 미국 대선 개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불륜, 성희롱, 막말, 인종차별, 여성비하 등등 대통령 후보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흠결을 가진 인물이었다. 미국 역사 240년을 통틀어 공직과 군 경력이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예정이기도 하다.

이토록 부도덕한 인물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1980년대 헤비메탈 그룹 한 팀이 절로 떠올랐다. 헤비메탈 좀 들었다는 아재님들은 모를 리가 없는 그룹 ‘머틀리 크루’가 오늘 칼럼의 주인공 되시겠다.

보컬에 빈스 닐, 기타는 믹 마스, 베이스 니키 식스, 드럼에 토미 리. 깔끔하게 4명의 멤버로 결성되어 80년대 헤비메탈, 특히 LA 메탈의 대장으로 군림했던 그룹이 머틀리 크루다. 이전 시대 글램록의 화려하고 퇴폐적인 이미지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머틀리 크루는 음악에 있어서도 퇴폐성을 추구했다. 데뷔 음반에서부터 술과 마약, 섹스를 찬양하는 가사를 대놓고 써오다가 2집에서는 악마까지 끌어들였다. 4집 음반 타이틀은 ‘걸스 걸스 걸스’(Girls Girls Girls), 5집 음반 타이틀은 ‘닥터 필굿’(마약과 관련된 은어)이라니. 그다음에 발표한 베스트 음반 타이틀은 그들이 걸어온 81년부터 91년까지 10년 커리어를 정의해준다. ‘타락의 10년’(Decade of Decadance).

문제는 그룹 이미지나 노래가사뿐만 아니라 실제 사생활에서도 더없이 타락한 존재들이었다는 거다. 성 추문은 기본에다 술과 마약, 음주운전, 폭행 등등 온갖 나쁜 짓은 다 했다. 집과 거리, 호텔 가릴 것 없이 난동을 부려서 툭하면 경찰이 출동하고, 재판을 받고 교도소를 들락거린 적도 여러 번이다. 타블로이드 잡지에는 늘 이번에는 머틀리 크루가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보도되었다. 그때로 돌아가 보면, 트럼프의 기행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막말과 여성편력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와 80년대를 풍미했던 섹시 스타 패멀라 앤더슨의 결혼은 트럼프와 현재 부인 멜라니아와의 결혼과 겹쳐지지 않나?

대통령까지 되지는 못했지만 80년대 머틀리 크루의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하늘을 찔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메탈키드들에게 머틀리 크루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더없이 부도덕한 존재에 열광을 보내는 현상.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배덕의 쾌감이라는 표현을 떠올려본다. 배덕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도덕에 어그러짐’이다. 도덕에 어그러진 행위를 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경험(예를 들면 노상방뇨)은 크건 작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쾌감은 해방감과 연결되어 있다. 선을 추구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자, 질서를 지켜라,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등등 태어나서부터 우리가 듣는 ‘도덕적 훈계’들은 모두 억압적이다. 욕망과 자유를 억제하는 데서 도덕성이 답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도덕한 행위를 할 때 우리는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일탈과 범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은 겁이 나서, 또는 기본적으로 선량해서, 어느 정도 이상의 일탈을 저지르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대놓고 부도덕한 존재를 보면 거부감과 동시에 비밀스러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80년대 머틀리 크루의 인기도, 트럼프의 당선 과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배덕의 쾌감’이 어느 정도 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물론 트럼프의 부도덕함과 머틀리 크루의 부도덕함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머틀리 크루의 부도덕함은 팬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데 그치지만, 트럼프의 부도덕함은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질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당선 이후 며칠간 보여준 트럼프의 행보는 의외로 멀쩡해 보인다. 혹자는 선거 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막말과 기행이 화제를 모으기 위한 설정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무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진짜 나쁜 놈보다는 나쁜 척하는 놈이 낫지 않은가.

진짜 나쁜 놈들이었던 머틀리 크루는 나쁜 짓을 하기에 너무 늙고 순해진데다 해체까지 해버렸다. 자고로 록음악은 공연장에서 들어야 제맛이지만, 이제 공연을 볼 수 없으니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끝으로 칼럼을 맺고자 한다. 운전할 때 손으로 핸들을 두드리며 ‘킥스타트 마이 하트’(Kickstart My Heart)를 듣는다. 술에 취한 채 머리를 흔들면서 ‘걸스 걸스 걸스’를 듣는다. 배덕의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에 듣는다. 어느 경우든 보통 때보다 더 큰 볼륨으로 들을 것.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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