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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4 15:38 수정 : 2017.07.14 20:50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돌이켜보면 나는 아주 제대로 힙합에 입문했다. 1990년대 중반에 카투사로 군생활을 했는데, 미군부대는 한국군과 달리 내무반 대신 2명이 방을 나눠 쓰는 막사생활을 했다. 나는 힙합에 미친 흑인 룸메이트 ‘갠디’를 통해 처음 힙합을 접했다. 투팍(2Pac)을 위시해 스눕독(Snoop Dogg), 나스(Nas), 닥터 드레(Dr. Dre), 아이스큐브(Ice Cube) 등등 당시 독(이라고 쓰고 영감이라고 읽는다)이 오를대로 오른 힙합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들으며 기상을 하고 잠이 들었다. 갠디는 록음악을 좋아했던 내 취향을 존중해주려고 하루의 절반씩 좋아하는 음악을 방에서 틀자고 했지만, 난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힙합 음악의 신세계에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들었다. 일과가 끝난 우리 방에선 잠들 때까지 힙합 음악이 쿵쿵거렸다.

그때 내가 배운 절대적 명제는 다음과 같다. 힙합은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음악이다. 함께 힙합 파티를 즐기던 흑인 전우들은 한국 사람인 내가 힙합의 정신을 제대로 아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힙합의 정신도 잘 모르겠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랩가사를 다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왠지 이 음악이 좋아서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나에게 녀석들은 아낌없이 힙합 명반들을 소개해주고, 파티에 초대했다.

그렇게 힙합의 세례를 듬뿍 받고 제대하자마자 에미넴을 만났다. 뭐? 백인 래퍼?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백인이라서가 아니라, 백인치고는 너무 랩을 잘 해서. 게다가 에미넴의 음악에는 흑인 아티스트들의 힙합과는 분명히 다른 정신이 담겨 있었다. 흑인들의 힙합을 흉내내는 차원을 넘어서, 인종을 초월한 감정과 이슈를 음악에 담아내고 있음이 느껴졌다.

1972년생이니 우리나라로 치면 정확히 아재 세대의 핵심 연령층인 에미넴은 1998년에 첫 앨범을 발표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데뷔 앨범의 대성공 이후 3집을 발표하는 2002년까지, 에미넴은 그야말로 팝음악의 역사를 새로 썼다. 기록적인 앨범 판매량이나 공연 수익과 함께 평단의 지지도 함께 얻었다.

에미넴의 등장 전까지 힙합은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음악이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는 단단히 채워져 있던 검은 족쇄를 풀고 힙합을 모든 사람들의 품으로 보내주었다. 멀리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까지.

그 시기가 마흔 전후의 아재·언니들의 20대와 일치한다. 많은 아재·언니들에게 에미넴은 힙합과 동의어였다. 앞서 말한 대로 흑인들의 정통 힙합은 음악의 정신이나 가사의 벽이 너무 높았다. 에미넴의 음악은 인종을 불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힙합이었고, 덕분에 라디오에서도 티브이(TV)에서도 그의 노래가 종종 흘러나왔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나스, 닥터 드레, 아이스큐브의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조차도 라디오 피디로서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에미넴의 노래들은 자주 큐시트에 올린다.

3집 앨범 발표 이후, 에미넴은 긴 슬럼프를 겪는다. 특히 약물중독의 터널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다.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나 전성기의 쫄깃한 리듬, 날선 래핑,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은 온데간데 없었다. 평단도 대중도 외면하는 가운데 그의 시대는 끝이 나는구나 싶었다. 목화씨를 전해준 것만으로 문익점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듯, 힙합을 대중화시킨 데 기여한 공로만으로도 팝 역사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는 않을 테니…. 이런 생각을 하며 그를 추억의 아티스트 대열에 합류시키려고 했으나! 2010년 타이틀부터 의미심장한 <리커버리>(Recovery) 앨범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리고 여전히 현역 아티스트로 독설을 뱉어내고 있다.

이번 칼럼의 제목을 상기해보자. 아재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힙합. 굳이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넣은 데는 이유가 있다. 힙합만큼 세대를 타는 장르도 없다. 극소수의 힙합 마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성세대에 편입될 즈음부터 약속이나 한 듯 힙합을 듣지 않는다. 그 이유도 대충은 알겠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속성 자체가 선동적이니까. 기성세대에 침을 뱉고 주먹을 들이대는 음악이니, 공격당하는 대상으로서 불편하겠지.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힙합 음악을 듣는 행위는 지금의 10대, 20대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방법이다. 다행히 요즘 <쇼 미 더 머니>로 대표되는 ‘가요 힙합’은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보다는 젊은 세대의 사랑과 고민, 꿈을 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아재들이여, 겁내지 말고 힙합을 들어보자. 정 뭘 들어야 할 지 모르겠다면 20대에 흥얼거리던 에미넴의 노래를 다시 꺼내 들어보자.

여름이잖아요! 비트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가사는 몰라도 라임을 따라하는 것이 스웨그의 시작이다요(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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