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08 10:36
수정 : 2017.09.08 21:02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나훈아 공연 때문에 난리다. 서울과 부산, 대구에서 열리는 초대형 공연이 티켓오픈을 하자마자 매진된 것이다. 서울 공연은 겨우 7분 만에 몇 만석이 동이 났다. 가장 싼 좌석도 10만원이 넘고 비싼 구역의 자리는 16만원이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빛의 속도로 팔려나갔다. 취소표를 기다리는 팬들과 중고거래로도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지금도 애를 태우고 있다.
올해 나이 일흔. 데뷔한 지 반 세기가 넘은 나훈아의 여전한 인기를 분석하는 글은 내 몫이 아닌듯하다. 나는 나훈아라는 가수에 대해 잘 모르는데다가 그의 전성기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세대니까. 다만 나훈아 이야기를 할 때 자동적으로 따라 나오는 이름, 남진이라는 가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남진 나훈아’. 가요역사상 최고의 스타이자 라이벌이었던 둘의 이름은 마치 ‘연대 고대’, ‘강남 서초’, ‘짬뽕 짜장면’처럼 잘 붙어 다녔다. 그러나 둘의 행보는 무척 달랐다. 구름떼 같은 팬들을 몰고 다녔던 전성기에는 비슷해보였을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나간다.
남진은 대중밀착형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늘 우리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 각종 방송이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출연하시는 건 물론이고 사석에서도 그러하시다. 방송국 간부도 아닌, 나 같은 일선 피디하고도 동석한 자리가 있을 정도로.
사업 실패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개그맨 이봉원씨가 야심차게 오픈했으나 결국 문을 닫았던 일산의 불고기 식당이었다. 2004년 당시 디제이와 피디 사이를 넘어 숱하게 밤거리를 누비며 술을 마셨던 즈음, 이봉원씨의 소개로 남진 선생님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후배 연예인이 오픈한 식당에 축하 겸 오셨던 그 자리에는 다른 연예인들도 몇몇 있었지만 오로지 남진이라는 인물 외에는 아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아우라가 강했던 탓이겠지. 무게를 잡거나 큰 형님의 일장훈시 같은 것도 하나 없이, 그는 부드러운 미소와 가벼운 농담만으로도 보스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말석에서 가요계의 전설을 지켜보고 술잔을 부딪치며 느꼈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남진 맞아? 우리 부모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나훈아와 더불어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그 남진?’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진 선생님은 내가 하던 프로그램에도 여러 번 출연해주셨고 공개방송 섭외에도 응해주셨다. 까마득한 후배 가수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 음원을 발표한 예도 여러 번 있다. 신곡도 꾸준히 발표해왔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놓았겠는가? 쌓아온 명성은 또 얼마고, 히트곡은 좀 많은가? 그런데도 그는 무대가 어디든, 프로그램이 무엇이든, 팬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가 노래를 불렀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나훈아의 행보는 완벽히 정반대다. 20년 가까이 방송 일을 하고 있는 나도 그의 얼굴을 본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도 업무상으로도, 한 번도 없다. 그는 방송출연도 극도로 꺼리고 무대 또한 가리고 또 가려서 출연한다. 이번 공연도 그가 직접 연출한 무대다. 무려 11년만의 컴백 공연이니만큼 이번 기회에 방송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그는 공연 외에 어떤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혔다. 기자회견도, 인터뷰도 없단다. 그야말로 신비주의 마케팅의 정석이자 완벽주의자의 전형이다.
어제는 어느 선배 피디가 이런 말을 하더라. 남진보다는 나훈아가 진짜 스타라고. 몇 달 전에 있었던 남진 콘서트와 이번 나훈아 공연을 비교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느냐고. 수십 년 째 이어져 온 ‘남진 VS 나훈아’ 라이벌 논쟁은 나훈아의 승리로 끝났다고.
나는 그의 말에 절반만 동의한다. 연예인의 중요한 속성인 거리두기 측면에서는 나훈아가 뛰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략일 뿐이다. 남진 역시 나훈아처럼 모습을 감추고, 방송과 무대를 가리고, 극도로 연출된 이미지만 보여주었다면 이번 나훈아 공연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남진은 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아니, 전략이랄 것도 없어 보인다. 내가 본 남진은 꾸미고 계산하고 숨는 일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스타나 연예인이라기보다는 가수로서, 더 많은 노래를 더 많은 팬들에게 들려주고픈 마음이 우선인 사람이다. 서식지가 달라 절대 싸울 일이 없는 사자와 호랑이처럼, 남진과 나훈아 둘 중에 누가 더 대단한지 가릴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언제나 곁에 있는 큰 형님 남진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나훈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슈퍼스타였던 두 분이 아직도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고 감사할 뿐이다. 곁에서도 좋고 멀리서도 좋으니, 부디 두 분 다 오래오래 노래해주기를.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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