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10.27 14:30 수정 : 2017.10.29 15:20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김성재, 김광석

대학 시절 참 과외를 많이도 했다. 8학군 출신에 S대 영문과라는 학벌은 그야말로 과외에 안성맞춤이어서 강남에서는 안 다녀본 아파트 단지가 없다. 덕분에 부동산에도 일찍 눈을 뜨게 된 이야기는 생략하고, 1995년 어느 가을날 청담동 삼익아파트에서 있었던 일로 오늘 칼럼을 시작해볼까 한다.

나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공부보다는 농구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던 고1 학생에게 영어 과외를 하러 갔다. 벨을 누르고 문이 열리는데 맞아주시는 어머니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아이가 오늘 좀 우울하니 선생님이 달래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방에 들어갔더니, 10살 이후 울어본 적 없을 것처럼 튼튼하게 생긴 녀석이 훌쩍이고 있었다.

“야 인마. 너 왜 그래? 여친한테 차였냐?”

녀석에게 여자친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농담으로 그렇게 물었다. 녀석의 대답.

“성재 형이 죽었어요!”

성재? 성재가 누구더라? 순간 녀석의 책상 위에 흩어진 듀스의 음반 재킷이 눈에 들어왔다. 듀스의 김성재? 그 성재 형이 죽었다고? 나는 녀석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나중에 집에 돌아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불과 며칠 전 화려한 솔로 데뷔 무대로 새 출발을 알린 김성재는 그렇게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다.

뉴잭스윙이라는 거창한 음악 용어를 들먹일 것 없이, 듀스는 90년대 최고의 힙합 듀오였다. 대부분의 노래를 작사 작곡한 이현도가 듀스의 몸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우나 함께 춤추고 노래한 김성재의 존재감 역시 대단했다. 너무 강하고 영리해서 부담스러웠던 이현도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김성재의 해맑고 발랄한 영혼은 더욱 눈부셨다.

김성재는 스타일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 시절 엇비슷한 옷과 헤어스타일을 한 다른 연예인들의 모습을 지금 보면 촌스럽게 느껴지는 반면, 김성재와 듀스의 스타일은 여전히 멋져 보인다. 당장 홍대 거리에 재현시켜도 ‘오, 멋진 복고풍 스타일인데?’라는 탄성이 나올 것 같다.

그는 정말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대로 놀 줄 아는 형’의 아우라를 풍겼고, 그 시절 그를 동경했노라는 연예인들의 증언이 요즘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잇따르고 있다. 배우 김하늘은 김성재가 너무 멋져 보여서 동료 연예인이 아니라 여자로서 만나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성재 형이랑 같이 클럽 한 번 가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 식의 팬심을 품은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거다. 실력은 이현도, 인기는 김성재였다고 말한다면 이현도가 섭섭할까?

비록 듀스는 해체했지만 둘은 함께였다. 김성재의 솔로 데뷔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준 사람도 이현도였다. 데뷔무대는 극찬을 받았고 음반 또한 흥행이 예견된 수순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 화려한 데뷔무대를 선보인 바로 그 날 밤에 김성재는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다.

몇 년 동안 줄곧 음악 이야기만 해 온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이미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테니 사건 설명은 생략한다. 유일하고도 유력한 용의자였던 그의 여자친구가 결국 무죄로 풀려나 지금도 치과의사로 살아가고 있다는 후일담도 꽤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듯하다. 나처럼 열성 팬들이라면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짚어보고 재판과정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글이나 다큐멘터리도 찾아봤을 거다. 수사기법이 훨씬 발달한 지금이라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반 대중의 감시기능이 생긴 지금이라면 재판 결과가 어땠을까 싶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스타의 의심스러운 죽음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가수, 김광석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한다. 역시 사건 설명은 접어두겠다. 김광석의 부인이었던, 최근에는 딸의 죽음과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는 서해순씨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이 한 마디만. 웃지 마세요. 수많은 사람을 노래로 위로해주었고, 세상을 떠난 지금도 청춘의 고달픔과 자꾸 멀어져만 가는 중년의 쓸쓸함을 달래주고 있는 위대한 가수의 죽음을 말하면서 웃지 마세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딸, 당신의 딸이기도 한 그 아이의 죽음을 말하면서 감히 웃지 마세요. 김광석의 노래를 사랑했던 수많은 팬의 얼굴에, 상식적인 감정과 사고를 가진 부모들의 얼굴에 당신은 웃는 얼굴로 침을 뱉고 있습니다. 제발 멈추세요.

라디오 피디로서 듀스와 김광석의 음악을 틀 때마다 서글퍼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현행법으로는 다시 진실을 파헤치고 그에 따라 책임을 묻는 일이 힘들다는 말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감수성 폭발하는 소녀팬의 심정으로 외치고 싶다. 누가 우리 오빠를 죽였나요? 사건의 재수사를 요청합니다.

<에스비에스>(SBS) 피디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