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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10 16:41 수정 : 2017.11.10 19:56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트로트의 진화 (1)

한겨레 자료 사진

트로트란 무엇인가? 장르를 칭함에 있어서 성인가요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짜장면도 표준어가 된 이 마당에 그냥 편하게 트로트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서양의 춤곡인 폭스트롯(fox-trot)에서 유래한 표현이며 일본의 엔카에서 영향을 받은 장르라는 해석도 있으나 이제는 별로 의미 없는 설명이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아예 다른 음악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외적인 사회 분위기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일제강점기에서 군부정권으로 이어지는 엄혹하고 가난한 시대가 저물고, 자유와 풍요의 물결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재가 되어버렸지만, 소위 엑스세대라는 괴상한 이름하에 나만 좋으면 어떠냐는 식의 가치관을 지닌 젊은이들(필자를 포함한)이 문화 소비의 중심에 섰다. 트로트도 이런 분위기에 발맞추며 극적인 변신을 이뤄냈다. 리듬에 있어서는 2박자, 멜로디에 있어서는 5음 음계, 가사에 있어서는 슬픔에 대한 천착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과거 트로트의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래들이 등장했다. 요즘 아재들이 ‘트로트’라는 말을 들으면 떠올리는 음악도 그 언저리에서 시작한다.

한겨레 자료 사진
21세기가 막 열린 시점이었다. 장윤정이 ‘어머나’를 국민가요로 히트시키고 박현빈이라는 또 다른 스타가 탄생하고 둘을 롤모델로 하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세대 트로트라는 표현이 트렌드로 받아들여졌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 스테이션에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나도 방송국에 들어오자마자 트로트 프로그램을 기획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전까지 트로트라고는 대중교통에서 스치듯 들어본 적밖에 없던 20대 피디에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프로그램을 거부할 순 없었다.

입시 공부를 하듯 트로트의 역사부터 훑었다. 힙합과 하드록 대신 트로트 메들리를 들으며 출퇴근을 했다.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니던 빨간 스포츠카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을 누른 채, 매일매일 트로트를 틀어댔다. 겪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몇 년 동안 트로트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푹 빠져버렸다. 노래방의 끝 곡은 오아시스의 ‘돈트 룩 백 인 앵거’에서 소명의 ‘빠이빠이야’로 바뀌었고, 수많은 가수들과 친분이 생겼다.

장르의 특성상 대부분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이모, 삼촌뻘 가수들이었는데 ‘애기 감독님’이라며 나를 예뻐해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누님들은 공개방송이라도 할 때면 고생이 많다며 어찌나 꼭 안아주시던지. 현숙 누나, (서)지오 누나, (한)혜진 누나 등등은 요즘도 만나면 재회의 기쁨을 포옹으로 표현해주신다. 지방 행사에서 환대받는 트로트 장르의 특성상, 전국 팔도의 특산물을 갖다 주시는 가수들도 많았다. 나도 지방 공개방송을 꽤나 다녔고. 덕분에 젓갈이란 젓갈은 다 먹어봤다. 돌아보면 참 정겨운 시절이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트로트 전성시대는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저물었고, 그 많던 트로트 프로그램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중앙 무대에서 밀려난 트로트 가수들은 지역 방송이나 행사장, 야간업소에서 명맥을 이어갔다. 강호에서 쫓겨난 고수들처럼 절치부심하며 암흑기를 견뎌냈다.

그 결과 요즘 다시 트로트 가수들이 자주 눈에 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진가를 이어받은 홍진영을 필두로 행사의 여왕 금잔디, 아이돌 외모와 세련된 음색의 왕자님 신유 등 젊은 스타들이 팬덤을 형성했다.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진성의 ‘안동역에서' 같은 메가히트곡도 나왔다. 남진, 태진아, 현숙, 박상철 등 기존의 스타들도 꾸준히 신곡을 발표해왔고 아이돌그룹이나 걸그룹 멤버 느낌의 파릇파릇한 트로트 신인들도 어느 때보다 더 많이 탄생하고 있다. 실속만 보자면 2000년대 초반의 트로트 전성시대보다 요즘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왜 트로트를 듣는가? 반대로, 우리는 왜 트로트를 듣지 않는가? 트로트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수준이 낮아서 못 듣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일리 있는 폄하다. 행사와 업소가 주 무대이기에 노골적이고 저속한 경향을 띠는 노래들이 워낙 많기는 하다. ‘뽕끼’라고 부르는 트로트 특유의 창법이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에 등을 돌려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장르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들으면 너무나도 멋진 노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노래를 소개하는 일은 내 직업이자 소명이다.

백문이 불여일청. 매번 고만고만한 노래들만 돌려 듣기 지겨운 분들께 별미처럼 트로트 몇 곡을 엄선해 추천해본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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