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09 17:47
수정 : 2018.02.09 20:03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속주 기타리스트의 추억(2) 개성 만점 연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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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빅’ 멤버들. 에릭 마틴, 빌리 시언, 팻 토피, 폴 길버트.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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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는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맘스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등장 이후 기다렸다는 듯 속주 기타리스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니 무어, 토니 매캘파인, 크리스 임펠리테리, 폴 길버트, 조 새트리아니, 스티브 바이 등등. 실상 레이스라도 구경하듯 우리는 누가 더 빨리 치는지 귀를 기울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를 찬양하기 바빴다. 당시 음악 잡지나 음반 해설지를 보면 속주 기타리스트들을 수식하는 표현이 참으로 깨알 같다.
빛의 속도로 달린다! 이것은 연주가 아니라 묘기다! 숨 쉴 틈도 없는 속도의 향연! 당신은 그의 손가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기타를 무척 빨리 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그들의 스타일은 제각기 달랐다. 하드록에 미쳐 있던 나에겐 모두 개성 만점의 연주자들이었으나 엔간한 음악 팬들 귀에는 다 똑같이 들렸을 거다. 지금 돌이켜보면 연주자들의 잘못이 아니라 팬과 평론가들이 지나치게 속도 경쟁 구도로 몰아간 측면이 있다. 야구만 해도 타자들마다 개성과 쓰임이 다른데 홈런 개수에만 열광했달까. 속주 기타리스트들의 특징을 여기서 일일이 다 설명할 순 없으니 몇몇 추천곡으로 대신하겠다.
1. ‘섬 웨어 오버 더 레인보’―임펠리테리
순간 최고 속도로는 단연 최강인 크리스 임펠리테리가 팝의 고전을 연주했다. 영롱하게 빛나고 넘실대며 치솟는 연주를 듣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왠지 날 수 있을 것 같아.
2. ‘크라잉 머신’―스티브 바이
기타계의 에디슨이라고 부르고 싶다. 속주 테크닉도 넘사벽이지만 실험정신이 투철해 7현 기타(보통 기타는 줄이 6개다) 같은 신선한 시도를 선보였다. 이 곡은 기타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인데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많이 쓰여 귀에 익은 분들도 있겠다. 이런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속주 기타리스트들은 그저 빨리 칠 줄밖에 모른다는 비판이 얼마나 어리석은 편견에서 비롯하는지를 알 수 있다.
3. ‘대디, 브러더, 러버, 리틀 보이’―미스터 빅
천재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가 초절정 고수들과 함께 결성한 그룹 미스터 빅의 시그니처 송. 이 노래에는 ‘드릴 송’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노래 시작 부분과 기타 솔로 중 일부분을 드릴로 연주하기 때문이다. 드릴 날에 기타 피크를 달아서 돌려버린다. 아무리 사람이 빨라도 드릴만큼 빨리 연주할 수는 없을 테니. 반칙인가? 숨 막히는 기타 솔로 외에도 노래 자체로도 끝내주니까 망설이지 말고 들어보시라. 가사는 또 어떤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의 아빠이자 오빠이자 연인이자 귀염둥이 꼬마가 전부 되고 싶단다. 꺅.
잠시 추억팔이를 할 시간. 적지 않은 아재들이 그랬듯이 나도 고등학교 시절 록음악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스쿨밴드를 했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불렀는데 공연도 자주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헤비메탈이라면 질색하던 집안 분위기 때문에 기타 연습은 부모님이 잠든 새벽에 했다. 심지어 앰프도 연결 안 된 전자기타로. 그러니 실력이 쉽게 늘 리가 없었다. 더 슬픈 일은, 하필 우리 학교에서 기타를 제일 잘 치는 녀석과 같은 여자애를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여자아이는 별명이었던 ‘칼머리’로, 기타 짱 친구는 에스(S)라고 하자. 칼머리는 요즘으로 치면 어장 관리를 하던 끝에 결국
에스를 선택했다. 상심한 나는 찌질하게 자율학습실 앞에서 이유를 물었다. 칼머리의 대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에스가 너보다 더 기타를 빨리 치잖아.”
꽤나 연애를 해본 이제는 안다. 겨우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더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나는 기타 실력으로는 에스를 이길 자신이 없었고 왠지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스쿨밴드를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했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 시대는 변했고 트렌드도 바뀌었다. 기성세대는 94학번인 내 또래를 가리켜 엑스(X)세대라는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불렀고, 록 신에서는 헤비메탈이 몰락하고 얼터너티브가 득세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영웅이었던 속주 기타리스트들은 그저 손재주만 부리는 한심한 무리로 취급받게 되었고, 속도와 테크닉에 열광하던 1980년대의 기준으로는 기타를 칠 줄 안다고 하기도 민망한 커트 코베인 같은 솔 충만한 뮤지션들이 세계를 정복했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속주 기타리스트들의 전성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근거는 없다. 그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들도 있더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철없던 소년 시절도,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도 다시 오지 않는다. 결국 또 사랑 타령이냐고? 지디(GD)와 심수봉이 노래하지 않았나. 영원한 건 절대 없고 사랑밖엔 난 모른다고.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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