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3 05:00
수정 : 2018.06.23 09:28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이렇게 재미없는 월드컵은 처음이다. 돌아보면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엔 더하다. 그 전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은 그나마 꽤나 떠들썩했던 분위기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웅이었던 태극전사들 중에 적지 않은 선수들이 여전히 대표팀에서 뛴 덕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스타플레이어의 티켓 파워는 어마어마하니까.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들이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지금, 월드컵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식어버렸다. 국민 탓 하지 마라. 축구협회의 거듭된 실책과 대표팀의 실력 저하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의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월드컵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4강 신화로만 2002년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해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화가 탄생한 해이기도 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무명 후보에서 갖은 악재를 정면 돌파하며 당내 경선 1위로 솟아오르던 그의 기세는 세계 축구의 변방 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치르고 4강에 오르던 짜릿한 과정과 동시진행형이었다. 너무나도 드라마틱했던 경선 과정은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 제목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가 담겨 있을 거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당내 경선 과정에 할애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궁금했었다. 대통령이 된 후의 수많은 사건들은 내버려두고 왜 경선 과정에만 집착했을까? 이 글을 쓰면서 어렴풋이 알겠다. 바로 그때가 인간 노무현이 가장 빛났던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 2002년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록 우리 대표팀은 4강에 머물렀지만 노무현은 당내 경선 통과에 머무르지 않고 결승전까지 내리 이겨버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다.
2002년. 나는 에스비에스(SBS)에 갓 입사한 2년차 피디였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었으며 혈기왕성한 20대 청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젊었던 시절과 우리나라가 가장 젊었던 시절이 겹쳐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는데 착각만은 아닌 듯하다. 월드컵의 인기도 치솟았고, 정치인 노무현의 기세도 치솟았던 그 시절, 나 역시 인생에서 치솟아 오르는 느낌으로 살았다. 그때까지 16강 문턱에도 가 본 적 없던 대한민국 대표팀이 무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꺾었다. 초반 지지율 2%의 꼴찌 후보 노무현이 쟁쟁한 경쟁자들을 차례로 꺾더니 이회창이라는 거물마저 물리치고 대통령이 되었다. 전복의 에너지가 거리마다 넘실거리던 시절이었다. 젊음과 가능성이 동의어였던 시대였다. 스스로를 삼포, 오포 세대라고 자조하는 요즘의 청춘들에게는 정말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그때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정말 그랬다. 그 시절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가수가 윤도현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노래를 부르며 내공을 쌓아오던 그가 가요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우뚝 서게 된 계기 역시 월드컵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수많은 응원가들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오죽하면 응원가들을 모은 붉은색 표지의 시디(CD)가 방송국에 널려 있을 정도였다. 신해철의 ‘인투 디 아레나(Into the Arena)’와 ‘아리랑’, 클론의 ‘발로 차’, 조수미의 ‘챔피언스’ 등 지금 들어도 가슴 뛰게 만드는 응원가들 중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는 단연코 ‘오 필승 코리아’다. 윤도현은 바로 그 노래를 부른 가수였고 승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전국의 응원무대를 누볐다. 그는 월드컵뿐만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당시로는 드물게 공개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로커 윤도현과 거침없는 정치인 노무현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월드컵의 열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내내 이어졌는데 그 기간이 윤도현의 전성기와도 겹쳐진다. 우리나라 록의 역사로 볼 때 로커로서 윤도현보다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여럿 떠오르지만 대중적 인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윤도현 만큼 남녀노소에게 두루 사람 받았던 로커는 아무리 꼽아 봐도 없다. 티브이(TV)를 틀기만 하면 윤도현이 나왔고 라디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윤도현 밴드(와이비·YB)의 노래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방송인으로서도 그의 인기는 최고를 달렸다. 월드컵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오 필승 코리아’가 깔렸다. 신입 피디이자 록음악 마니아로서 무척이나 뿌듯했다. 록음악을 해서도 저렇게 성공할 수 있다니!
그토록 뜨거웠던 2002년으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정권을 잡았다. 윤도현의 활동도 눈에 띄게 뜸해졌다. 월드컵 열기도 식어버렸다.
그리고 이제 노무현, 월드컵, 윤도현의 신화는 각각 다른 경로에 놓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자랑스러워하던 친구 문재인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몇 번의 월드컵이 더 치러졌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광이 다시 재현되는 일은 없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 대표팀은 스웨덴에게 패해 16강 진출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그렇다면 윤도현은 어디에 있는가? 더불어 한국 록음악은 어디에 있는가? 그 해답은 다음 화에.
에스비에스(S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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