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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1 04:59 수정 : 2018.09.01 13:20

<한겨레> 자료 사진
네번째 음반 <어 나이트 앳 디 오페라>가 퀸의 가장 뛰어난 음반이었다는 평에는 이견이 별로 없는 듯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같은 명곡 때문만이 아니라 첫 곡부터 끝 곡까지 하나의 음반으로서 구성이 완벽에 가깝다. 진부한 표현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획득한, 이른바 명반의 표본이랄까.

엠피스리(MP3)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이제 유튜브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좋아하는 노래들만 쏙쏙 골라 듣는 시대에는 이런 음반이 탄생하기 어렵다. 요즘 아티스트들은 정규 음반을 내는 일 자체가 별로 없으니까. 이제 ‘명반’이라는 표현은 ‘공테이프’나 ‘주산 부기’처럼 추억의 무덤에 안장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적인 록스타로 발돋움한 퀸은 기세를 이어간다. 이듬해인 1976년에 5집 <어 데이 앳 더 레이시스>를 발매하는데 음반 표지부터 구성이 전작과 흡사하다. 많은 팬들이 쌍둥이 음반이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 그 말인즉슨 이 음반 역시 끝내준다는 말씀! 프레디 머큐리 작곡의 ‘섬바디 투 러브’,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주도하는 화끈한 로큰롤 ‘타이 유어 마더 다운’등이 히트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노래는 ‘어 굿 올드패션드 러버 보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지나간 연애를 떠올리는 기분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았던 그런 연애 말이다.

4집의 찬사에 가려 5집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이 음반은 퀸의 커리어에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음반 이후 프레디 머큐리는 창법을 완전히 바꿔서 훨씬 굵고 강한 로커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달리 말하면 프레디 머큐리만이 낼 수 있었던, 성별을 넘나드는 높고 섬세한 고음의 절창이 최고조에 달했던 음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퀸뿐만 아니라 위대한 그룹의 전성기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영감이란 것은 아티스트의 일생에 걸쳐 골고루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구나. 퀸 역시 그랬다. 1974년에 두번째 음반을 발표한 이후 5년 동안 무려 일곱장의 정규 음반과 무수한 히트곡들을 쏟아낸다.

앞서 말한 5,6집도 대단했지만 사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퀸을 알게 해준 음반은 1977년에 발매한 6집 <뉴스 오브 더 월드>다. 바로 이 음반에 불멸의 응원가 ‘위 윌 록 유’와 ‘위 아 더 챔피언스’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 음반의 첫 곡과 두번째 노래로 이어지는 접속곡으로 두 곡이 합쳐서 딱 5분이다.

두 곡의 스타일은 정반대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작곡한 ‘위 윌 록 유’는 단순하고 선동적이다. 보컬 프레디가 만든 ‘위 아 더 챔피언스’는 극적이면서 감동적이다. 모든 작곡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 쉽고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장 단순한 비트와 멜로디로 순식간에 듣는 이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위 윌 록 유’야말로 록 역사상 최고의 명곡일 수도 있겠다. 또 경기가 끝나고 승자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 ‘위 아 더 챔피언스’가 흐를 때면 매번 전율이 느껴진다. 우승의 순간에 쓸 노래가 이 노래밖에 없단 말인가? 방송국 피디로서 안타까워하면서 동시에, ‘아, 이 노래가 최고다!’ 싶다. 정말 이 두 곡은 월드컵, 올림픽, 야구, 격투기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면 울려 퍼진다. 무려 40년 동안 지구촌의 대표 응원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년 넘게 매년 크리스마스 특수를 독식한다며 지탄받는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은 애교 수준.

80년대가 시작되면서 퀸은 또다시 변신을 꾀한다. 한참 유행하던 신디사이저를 과감하게 도입하고 디스코의 색채도 짙어졌다. 작곡 스타일에 있어서도, 미국 밴드로 착각할 정도로 팝적인 노래들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미국 시장의 반응은 열렬했다. 1980년에 발표한 8번째 정규 음반 <더 게임>은 빌보드 음반차트 1위를 차지하고 ‘크레이지 리틀 싱 콜드 러브’나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같은 노래들은 빌보드 싱글차트를 휩쓸었다.

휴우, 숨차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데뷔 7년 만에 아홉장의 정규 음반과 수십곡의 히트곡을 발표하고 전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가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이뤄버렸다. 그러나 너무 급히 달려온 것일까? 여왕이 왕좌를 빼앗기는 이야기는 다음 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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