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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31 17:05 수정 : 2019.06.02 21:35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로켓맨>의 개봉에 맞춰 지난번 칼럼에서 2회에 걸쳐 엘턴 존 이야기를 했다. 앞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환생해 세계를 휩쓴 프레디 머큐리가 그랬듯 엘턴 존 역시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였다. 팝 음악의 역사를 보면 자신이 이성애자가 아님을 밝힌 아티스트가 한둘이 아니다.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든데 아주 유명한 가수들 중에서는 조지 마이클이나 레이디 가가를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애덤 램버트에 이어 샘 스미스도 있다. <겨울왕국> 주제곡 ‘렛잇고’의 주인공 데미 러바토, 이번에 비티에스의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함께 부른 가수 홀지도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했다. 심지어 극강의 남성향을 상징했던 하드록 그룹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인 롭 핼퍼드조차 평생 남자를 사랑했다고 고백해 헤비메탈 아재들을 아연실색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우리나라는 가요 역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커밍아웃 가수를 찾아볼 수 없다. 확률적으로 참 어려운 일인데 정말 그렇다. 정말 이성애자 가수만 있었는지, 아니면 성정체성을 꽁꽁 숨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추측하지 않는 편이 나으니 호기심과 의심은 주머니에 넣어 두겠다. 커밍아웃을 한 가수는 전무하지만 원래 이성애자가 아니었던 가수는 딱 한 명 있었다. 트랜스젠더 가수 하리수가 오늘 칼럼의 주인공이다.

그는 게이는 아니다.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쉬운 말로 용어를 설명하자면, 게이는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남자인데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원래는 남녀 양쪽에 다 쓰이는 말이지만 요즘은 남자 동성애자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의 경우는 레즈비언이라고 부른다. 트랜스젠더는 전혀 다르다. 생물학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이 다른 경우를 말한다. 이를테면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여성으로 여기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로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남자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많은 경우에 육체를 개조하고 싶어 하며 실제 성전환 수술을 받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게이나 레즈비언이 성전환 수술을 받는 경우는 없다.

하리수는 이미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신했고 20대가 되자마자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연예계로 진출했다. 여전히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 무려 20세기에 벌어진 일이다.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심했던 시절이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겨우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영국에서도 그저 성적 지향이 동성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옥에 가야 했다. 천재 수학자이자 암호해독가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에 혁혁한 공을 세운 앨런 튜링 박사마저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 역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은 채 쓸쓸하게 죽어갔다.

이미 20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하리수는 2002년에는 성별 정정 및 개명까지 신청한다. 인천지방법원이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이름도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바꾸고 법적으로도 여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숱한 비난과 모욕에 시달렸지만 쫄지 않고 끝까지 갔다.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고 여러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가수로도 활동했다. 작년에도 새 노래를 발표했다.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내세우면서 방송도 열심히 했고 여러 차례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너무 이용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잘생기고 예쁜 얼굴을 이용하거나 섹시한 매력으로 인기를 끄는 사람들, 혹은 연예인들이 인생 역정을 고백하며 시청자를 모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도 다 비난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슈가 되는 발언들을 계속 내뱉다 보니 벌써 묻혔지만, 얼마 전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개인적으로도 정치인으로서도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가족의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게 반대하거나 찬성할 대상인가? 이를테면 나는 매부리코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을까? 혹은 황 대표가 고수하는 2 대 8 가르마에 우리가 반대할 수 있는 것일까? 우유를 소화 못 시키는 누군가의 위장에 찬성하고 복숭아 알레르기에 반대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동성애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1895년 5월25일, 당시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동성애 혐의로 재판한 판사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음으로써 한 천재의 인생을 끝장냈다.

“피고인은 젊은이들 가운데 퍼져 있는 가장 끔찍스러운 타락에 빠져 있다. 본 판사는 피고인에게 그의 행위가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동성애를 하는 이들은 수치심에 완전히 무감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폐기처분된 이 판결문이 황 대표의 목소리로 음성지원 되는 건 나만의 착각이겠지? 21세기가 열린 지 20년 가까이 지났다. 세계 최고 기업 애플의 최고경영자도 게이인 시대다. 제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 다른 식으로 행복하면 안 될까?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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