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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4 15:23 수정 : 2019.06.16 19:14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BTS 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1990년대 댄스 듀오 클론의 노래 ‘초련’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 자신 조차도 주체할 수 없는 이런 감정이 사랑인가 봐.” 어떤 대상에 대해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드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나는 방탄소년단(BTS·비티에스)을 사랑하고 있다.

이미 수백 개의 동영상을 찾아봤고, 매일 기사를 검색하고, 최애 멤버가 몇 번이나 바뀌었고, 굿즈를 구매하고, 공연 영상을 보다가 눈물까지 흘릴 정도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정신 차려 보면 이미 정국이의 복근 리액션 동영상을 보면서 웃고 있다. 아 이건 뭐지. 어쨌든 행복하다.

내가 최초로 빠져들었던 밴드는 레드 제플린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일인데, 음반을 전부 사 모으고, 멤버 이름은 물론이고 밴드의 역사 그리고 발표한 모든 노래의 제목을 외울 정도였다. 100여곡 쯤 되는데 지금도 외우고 있다. 그 다음에는 호주의 국민밴드 에이씨디씨(AC/DC), 그리고 비틀즈와 슬레이어로 옮아갔다. 전부 외국 록밴드였던 덕질의 대상이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가수로 바뀐 건 티아라. 토끼 의상을 입고 “뽀삐뽀삐”(Bo-peep)를 속삭이는 그들을 보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어린 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에 라디오 <컬투쇼>를 연출하던 때라 몇 번이고 게스트로 섭외할 수 있었다. 정말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이었던 거지. 그러나 얼마 못가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티아라를 ‘손절’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것이 내 마지막 ‘덕질’이었다. 꼭 10년 전의 일. 어쩌다보니 40대에 접어들었고 덕질은 사춘기의 추억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다 얼마 전, 이미 월드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에 제대로 빠져버렸다.

방탄소년단의 팬을 칭하는 ‘아미’ 중에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분들도 많다. 아미들하고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60대 아미도 본 적 있다. 심지어 그 분은 해외공연까지도 나가서 볼 정도로, 계급으로 치면 대령급의 포스를 풍겼다. 난 뭐 말년병장 정도? 1975년생. 올해 마흔 다섯 살인데다 중학생 아들까지 둔 ‘아재’가 어쩌다 방탄소년단에 빠져들었을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나는 방송국 피디로서 그들의 탄생 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제이와이피(JYP)에서 독립을 선언한 히트맨 방시혁이 기획사를 차렸는데, 키우는 아이돌 이름이 방탄소년단이라나 뭐라나…. 매니저한테 팀 이름을 전해 듣고 다들 웃었다. “무대 의상은 방탄 조끼냐”며 비아냥거렸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웃을 일이 아니었다. 방탄소년단은 쓰러지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전진했다. 그들이 입은 무대 의상은 정말로 방탄 조끼였다. 편견과 조롱을 튕겨내는 방탄 조끼.

방탄소년단은 국내 최고 아이돌 타이틀을 거머쥐고, 작년에는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고, 올해는 웸블리를 포함해 스타디움 투어를 돌았다. 현재 그들은 비교 대상이 없는 세계 최고의 보이그룹이다. 1억 뷰가 넘는 뮤직비디오가 수두룩하고 팝스타들이 앞 다투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한다. 국가와 인종, 나이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며 공연장에는 수만 명을 운집시킨다. 경제적 효과는 조 단위를 넘는데, 국위선양의 차원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어떤 외교관이나 정치인도 방탄소년단만큼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드높인 적이 없었다. 비슷한 정도도 없다.

다시 같은 질문. 나는 대체 왜 방탄소년단에 빠져들었을까? 이른바 ‘국뽕’이라고 부르는, 애국소년단 느낌 때문에? 아니다. 난 국뽕 영화는 공짜로도 안 본다. 노래가 좋아서? 지금은 하루 종일 들어도 안 질리지만 예전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다. 내가 방탄소년단에 빠져든 건 겨우 올 초부터다. 그러니 노래 때문도 아니다. 예전에 그들을 비웃었던 지상파 피디로서 죄책감 때문에? 그럴 리가. 난 그 정도로 양심적이지 않다. 그럼 대체 왜?

사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이 글을 썼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겠다. 나는 청년 세대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기성 세대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고 우리보다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들이 자기보다 더 잘 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기분이랄까. 방탄소년단과 관련한 수많은 영상들 중에서 유독 내가 리액션 영상에 심취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들이 방탄소년단을 보며 환호하고 감동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내 감정은 훌륭하게 자라난 아들을 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아빠와도 비슷하다. 잘 커줘서 고맙다.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그렇게 나는 방탄소년단에 빠져들었다. 한 번 빠지고 나니, 이곳은 행복한 개미지옥이다. 노래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고, 춤도 끝내주고, 공연은 감동의 도가니탕, 성품도 착해, 국위선양까지 하니 나갈 필요도 없고 나갈 수도 없다. 다만 탄이들이 힘들 때부터 응원해 온 초기 아미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다. 늦었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애 멤버를 고백하자면, ‘민빠답’(민윤기에게 빠지면 답이 없다) 슈가(SUGA) 선생 되시겠다. 특히 이번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뮤비 주인공은 슈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멤버들이 다 돌아가며 메인으로 서지만, 슈가의 랩파트가 등장할 때 임팩트는 압권이다. 누가 슈가만큼 해? 응? 수십 편의 리액션 영상을 보면서 연구한 결과인데, 슈가가 등장할 때 반응이 제일 폭발적이다. 물론 다른 멤버가 최애이신 분들 생각은 그렇지 않겠지만.

다음 편에는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세 가지 민감한 이슈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기대해주시길.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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